하루는 길고 인생은 짧다

by 고석근

하루는 길고 인생은 짧다


한 시간은 한없이 계속되는 영겁과 같을 수도 있고, 한 순간의 찰나와 같을 수도 있다. 그것은 이 한 시간 동안 우리가 무슨 일을 겪는가에 달려 있다. 시간은 삶이며, 삶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이니까 - 미하엘 엔데



우리의 유교 문화에서는 사람이 사는 동안 행복하려면 오복(五福)을 누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 중 첫 번째 복이 수(壽)다. 천수(天壽)를 누리다가 가는 장수(長壽). 그런데 몇 살까지 살다 가면 장수라고 할 수 있을까?


나이가 들어가니 희망 수명의 나이가 점점 늘어난다. 중년에는, 82세 정도면 적당하리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 나이가 멀지 않게 되니, 한 해 두 해 늘려가게 된다. 이제는 80 대 후반까지 늘어났다.


그러다 90세도 넘기려나? 90세 이상 살아계신 분들 얘기가 나오면 귀가 솔깃해진다.


‘나도 그 나이까지 장수할 수 있으려나?’ 60대 후반이 되며 진지하게 장수를 생각하게 되었다.


가끔 이렇게 생각한 적이 있다. 싫어하는 일을 하거나 하면 시간이 엄청나게 늦게 가잖아.


그럼 가장 하기 싫어하는 일에 매달리면 장수하는 것 아냐? 학창 시절에 벌을 서게 되면 시간이 얼마나 더디게 갔나?


장수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루 종일 벌을 서듯이 살아가면 되는 것 아냐? 이런 방법으로 장수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미 지루한 벌을 받고 있다. 직장 생활하면 하루는 얼마나 긴가? 그런데 직장 생활이 익숙해지면 시간이 화살처럼 흐르기 시작한다.


‘응? 언제 한해가 갔지?’ 하루는 긴데 한해 한해는 얼마나 빨리 가는가? 이렇게 쌓인 인생은 얼마나 짧은가?


한 평생을 되돌아보면 손에 다 잡힐 듯하다. 수십 년이 한순간이다. 왜 그럴까? 하루하루는 참으로 긴 시간이었는데.


100년을 살아도 오래 살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것이다. 남들은 그만큼 살지 못하니까 위안은 될지 모르지만.

장수는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왔느냐의 문제다. 직장을 그만두고 자유인이 되어 세상을 떠돌 때.

시간은 어찌나 빨리 가던지,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 하루가 갔다. 시 공부한 후, 폭발하는 뒤풀이의 시간들.

그런데 이렇게 화살처럼 날아가는 시간들이 모여, 풍부한 시간들이 내 앞에 쌓이기 시작했다.


카르페 디엠, 시간이 강물처럼 흘러와 내 주변에 머물렀다. 나는 풍요로운 시간들에 둘러 쌓이게 되었다.


‘한 시간은 한없이 계속되는 영겁과 같을 수도 있고, 한 순간의 찰나와 같을 수도 있다... 우리가 무슨 일을 겪는가에 달려 있다.’


시간은 시계, 달력의 시간이 아니었다. 과거, 미래는 우리가 정한 시간일 뿐인 것이다. 우리가 온 몸으로 지각하는 시간은 오로지 현재다.


자유롭게 살기 시작하자, 나는 차츰 현재를 자각하게 되었다. 잃어버린 시간들이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생생한 현재, 쏜살같이 흐르는 시간 위에서의 현재가 아니었다. 지금 여기에 살아있는 나와 함께 살아있는 시간이었다.


이제 장수를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오래 사는 것이 아니었다. 공자가 말한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은 삶’이었다.


석가는 말했다. “깨달은 자는 시간에 먹히거나 시간에 제한당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시간을 먹고 시간을 고르기에 시간으로 인해 근심할 일이 없는 것이다.”


시간에 대한 이런 이치를 알고 나니, 진정으로 장수를 하고 싶은 욕심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인생이 한 시간뿐이라면

봄은 15분

그 사이에

젓가락 바로잡기와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고

〔......〕

배웠던 자전거를 타고 떠나

어딘가 머나먼 마을에서

사랑을 하고

채여서 우는 것이다


인생이 한 시간뿐이라면

나머지 45분을

분명

봄의 15분 사이 즐거웠던 그 추억만으로 살 수 있다


- 타카시나 카이지, <인생이 한 시간뿐이라면> 부분



시인은 ‘인생이 한 시간뿐이라면’ ‘봄의 15분 사이 즐거웠던 그 추억만으로 살 수 있다’고 말한다.


문제는 봄의 시간이 없는 삶일 것이다. 한평생 불모의 시간만 보낸 삶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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