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투스
민주주의란 왕들을 몰아내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을 왕으로 만드는 것이다. - 모어 하우스
고등학교 때 육사에 가려고 한 적이 있다. 집이 가난해 대학을 못가니 학비가 무료인 대학을 생각한 것이다.
어머니가 완강히 반대해서 결국 포기했다. 어머니는 한국전쟁을 겪은 트라우마가 큰 것 같았다.
“안 된다. 군인은 절대 안 돼! 전쟁나면 죽어!”
그때 왜 육사에 가려했을까? 단지 학비가 무료여서였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무의식중에 ‘상명하복의 절도 있는 직업’에 끌린 게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나는 가난한 소작농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항상 바쁘신 부모님의 역할을 대행했다. 동생들의 모범이 되어야 했고, 동생들이 잘못하면 벌을 주어야 했다.
자라면서 몸에 배인 성품, 이것을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아비투스’라고 했다.
아비투스는 제2의 천성이다. 가부장문화 속에서 자란 나는 나도 모르게 ‘명령에 죽고 사는 성격’을 갖게 된 것이다.
학교에서 민주 시민의식을 배워도 민주의식은 머릿속에만 있지 가슴으로 내려오지 않는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규율이 엄했다. 길에서 상급생을 만나면 부동자세로 서서 거수경례를 했다.
점심시간에 식사를 하다가도 상급생이 들어오면 즉각 수저를 내려놓고 부동자세를 취했다.
이런 학교 문화가 처음에는 거부감이 일었지만, 차츰 몸에 배게 되면서 편안해졌다. 나중에는 자랑스러워지기까지 했다.
졸업한 지 수십 년이 지난 뒤에도, 이 문화는 엄격하게 관철되고 있다. 머리 희끗한 후배가 무릎을 꿇고 선배에게 술을 따른다.
선배는 후배를 사랑하고 후배는 선배를 존경하며 따르는 봉건적인 문화. 이런 문화 속에서 ‘개인’은 사라진다.
개인이 사라진 인간은 얼마나 편안한가? 기계처럼 정해진 규율만 지키면 되니까. 상명하복의 기계 부품 같은 인간은 생각 없이 살아간다.
나는 나름대로 인문학을 공부하고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며 민주주의의 가치를 소중히 한다고 생각하지만, 습(習)이 되어버린 봉건의식은 나의 무의식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히틀러의 파시즘에 대해 깊이 연구한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자 빌헬름 라이히는 가부장의 문화가 파시즘을 낳는다고 말한다.
그는 독일 국민들이 히틀러 같은 파시스트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보낸 이유를 가부장 문화에서 찾는 것이다.
히틀러는 약자를 지배하는 데서 오는 쾌감을 즐기는 사디스트(가학증 환자)였고, 일반 국민들은 지배를 받는 데서 오는 쾌감을 즐기는 마조히스트(피학증 환자)였다는 것이다.
정치학자 모어 하우스는 말했다. “민주주의란 왕들을 몰아내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을 왕으로 만드는 것이다.”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 김지하, <타는 목마름으로> 부분
민주주의는 민(民)이 주(主)인 사회체제다.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스스로를 우리나라의 주인, 왕이라고 생각할까?
오랜 봉건체제의 왕을 몰아내고 모든 국민이 왕이 된 민주주의 제도. 우리는 언제 봉건의식을 말끔히 씻어내고 왕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