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오소호(從吾所好)
행복할 때는 우리가 고난을 어떻게 견딜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고난 속에서 비로소 자기 자신을 알게 된다. - 칼 힐티
공부 모임 시간에 증권회사 다니는 분의 아내가 말했다. “요즘 새로 들어오는 신입사원들은 다들 ‘아빠 카드’를 쓴다고 해요.”
다들 부러워하며 한마디씩 했다. ‘고액 연봉의 직장에 다니며 아빠 카드를 쓰며 사는 기분은 어떨까?’
중학교 교사인 한 회원이 말했다. “요즘 새로 들어오는 교사들은 외제차를 타고 다녀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흙수저’도 들어갈 수 있던 직장들이었는데, 이제는 ‘금수저’가 다 차지해버렸나 보다.
나는 어린 시절에 ‘부모찬스’가 있는 아이들이 너무나 부러웠다. 그들은 흙냄새가 짙게 배인 우리들과 달랐다.
희멀건한 얼굴, 항상 해맑게 웃는 얼굴. 그들의 당당한 몸짓. 지금 생각해보면, 대단한 부모 찬스도 아니었는데, 나는 그들 곁에 가면 주눅부터 들었다.
나는 항상 공상의 나라에서 나를 버텼다. 그렇게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고 기르며 나는 알게 되었다.
부모찬스 없는 것이 부모님이 물려주신 가장 위대한 유산이라는 것을. 나는 일찍이 이 세상은 나 혼자 헤쳐 나가야한다는 것을 몸으로 익혔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부모님이 부모찬스를 물려주셨으면 지금 나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나는 부모님이 물려주신 유산을 우리 아이들에게도 물려주었다. 아이들도 어릴 적부터 자신들이 선택하는 길을 가고 있다.
우리 부부는 아이들에게 ‘자그마한 부모찬스’를 줄 기회도 있었는데, 아이들에게 전혀 부모찬스를 주지 않았다.
공자의 ‘종오소호(從吾所好-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리라)’는 가장 위대한 가르침이다.
인간은 두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 인간은 물질인 육체를 가진 존재이기에 물질을 소중히 하며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육체는 사실 ‘에너지 장(場)’이기에,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의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물질은 에너지의 파동이 낮은 것이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기에, 물질의 실상은 에너지 장이다.
물질은 허상인 것이다. 하지만 물질인 육체를 가진 동안은 인간은 충실하게 물질로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육체의 실상은 에너지 장이라는 것을 하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 오로지 육체만을 섬기며 살아가서는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없다.
반드시 보복을 당하게 되어있다. 그 보복이 삶의 허무감이다. 끝없는 목마름이다. 한없이 깊은 우울이다. 쾌락과 향락에 빠져드는 황폐한 삶이다.
부모찬스는 이러한 삶을 살아가게 부추긴다. 육체의 삶이 고되어야, 인간 내면의 에너지가 활성화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의 삶에 눈뜨게 된다.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신화의 삶’에 대해 얘기한다.
신화는 오랫동안 인간에게 육체로 살아가는 시공간의 삶을 에너지 장의 영원의 삶으로 연결해주었다고 한다.
현대인은 로고스, 이성적 사고 중심으로 살아가기에 미토스, 신화의 마음을 잃어버렸다.
부모찬스는 로고스 중심으로 살아가게 한다. 미토스가 깨어날 기회를 잃어버리게 한다.
부모찬스가 없으면 많은 고난을 겪게 된다. 그런데 인간은 ‘고난 속에서 비로소 자기 자신을 알게 된다.’
인간은 고난을 겪어야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선명히 구별할 수 있게 된다.
조셉 캠벨은 자신의 내면에서 솟아올라오는 블리스(희열)가 신화적 삶으로 이끌어간다고 말한다.
내 삶을 뒤돌아보면 고난이야말로 나의 길을 밝혀주는 등불이었다. 육체를 넘어서는 영원의 삶을 찾아가게 했다. 나의 신화를 찾아가게 했다.
부모님은 가난하게 사셔서 내게 ‘공부하라!’고 한 적이 없다. 내가 가는 길을 묵묵히 지켜보시기만 하신 부모님이 한없이 고맙다.
캄캄한 혼돈 속에서 나는 나의 길을 찾아갈 수 있었다. 부모님이 항상 길을 밝혀주셨다면, 나는 부모님의 길을 한평생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 고정희, <상한 영혼을 위하여> 부분
우리는 고통을 온 몸으로 맞이해야 한다.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그러면 알게 된다.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우리의 몸은 에너지라 삼라만상과 항상 교신을 한다.
몸의 소리를 온 우주가 듣고 응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