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승자강(自勝者强)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영혼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 예수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설 쇠러 고향에 다녀오던 길이었다. 아버지께서는 버스 안에서 어떤 남자와 큰 소리로 싸우기 시작했다.
나는 창피해서 가만히 있었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 아버지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다음에 올 때는 택시 타고 올 거다!” 그렇게 흐지부지 싸움은 끝나고 버스 안은 조용해졌다.
그 뒤에도 아버지는 술만 드시면 다른 사람들과 자주 싸우셨다. 집으로 돌아오시면 술주정을 한참이나 하고 잠에 드셨다.
어느 날 밤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속삭이는 소리에 잠을 깼다. 엿듣고 있으니, 서울에 사는 이종사촌형님 얘기를 했다.
“내가 그놈들 언제 한번 혼을 내야지. 전화 한 통화면 다 끝나...... .” “그러지 말아요. 그 애도 바빠요.”
그 형님은 청와대에서 경호원을 하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청와대 경호실이 막강한 권력 기관이었다.
가끔 부모님은 억울한 일을 당할 때마다, 조심스럽게 그 형님 얘기를 했다. 그 형님은 부모님의 든든한 ‘빽’이었다.
그러다 아버지께서는 환갑을 지나고서는 조용히 사셨다. 가끔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지고 살아라!”
남을 이기려고 싸워 봐도 잘 안 되고, 또 이겨봤자 허망하다는 걸 알게 되셨던 걸까?
노자는 ‘승인자유력(勝人者有力), 남을 이기는 사람은 힘 있는 사람이고, 자승자강,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진정한 강자’라고 했다.
이제 우리 사회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사회가 되었다. 만인이 만인과 싸우는 세상에서 각자 살아남기!
삼라만상, 인간처럼 서로 이기려고 아등바등하는 존재는 없다. 각자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다들 강자다. 아무도 힘자랑하지 않는다. 각자의 길을 가기 때문이다. 인간사회가 아수라장이 된 건, 각자 자신의 길을 가지 않고 다른 사람의 길을 탐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모두 개성이 있는 존재다. 따라서 각자의 길을 가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어떤 길은 승자의 길이라고 정해져 있다.
그러니 다들 그 길을 향해 돌진하지 않을 수가 없다. 누구나 ‘루저’가 되기는 싫기 때문이다.
강남, 서울, 수도권, 신도시, 광역시, 지방... 사는 지역에 따라 승자와 패자가 선명하게 나눠진다.
출신 대학은 한평생 따라다니는 신분이다. 직장은 대기업- 중소기업, 정규직- 비정규직으로 나눠져 있다.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시절은 전설이 되어버렸다. 위로 올라가는 동아줄은 로또, 가상화폐, 주식뿐이다.
아버지의 한평생은 우리의 슬픈 역사다. 나는 운이 좋아, 루저가 되지 않고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의 후손들이 걱정이다.
아들들, 그 자녀들을 생각하면 숨이 막혀온다. 돈이 만물의 척도가 된 시대를 그 아이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코로나 19가 잠잠해지면, 회사에 다니는 작은 아이와 한 달에 한 번씩 술집에서 만나 인문학을 함께 공부하기로 했다.
내가 인문학에서 길을 찾았듯이, 작은 아이에게도 인문학을 통해 그 아이의 길을 찾아가게 하고 싶다.
인간은 자신을 이겨야 강자이니까. 강자가 되어야 행복하니까. 바다 같은 깊은 평온을 누리며 실아갈 수 있으니까.
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전등이 켜질 무렵을
문수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니 십구문반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 박목월, <가정> 부분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아버지가 가정을 잘 지키려면 얼마만큼 힘이 세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