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좌망(心齋坐忘)

by 고석근

심재좌망(心齋坐忘)


당신의 비전은 당신의 마음을 들여다 볼 때만 더 선명해질 것입니다. - 칼 융



나는 쫓기는 꿈을 가끔 꾼다. 낯선 곳에 갔는데, 아는 얼굴들 같은데, 눈빛과 행동거지들이 수상하다.


몰래 도망치려해도 그들은 어떻게 내 속마음을 눈치 챘는지, 도무지 놓아주려 하지 않는다.


안절부절 못하다 잠을 깬다. ‘휴, 꿈이었구나!’ 그러면 끝이다. 거미줄에 걸렸다 도망친 나비의 기분이 이럴까?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니다. 꿈속의 일은 내 마음의 무의식의 일이다. 낮에는 평온한 얼굴이나 내 마음 속에서는 나는 여전히 도망을 치고 있는 것이다.


나를 쫓는 사람들은 나의 어두운 모습들이다. 내가 버린 나의 그림자들이다. 그들은 내 무의식 깊은 곳에 꼭꼭 숨어 있다.


그들은 내가 잠들어 방심할 때 내 무의식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이다. 그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들은 점점 더 힘이 센 존재로 변신한다. 그들은 내가 받아 줄 때까지 더 강한 존재로 변신하여 나타난다.


정신분석학자들은 나의 꿈과 비슷한 사례를 많이 든다. 어떤 남자가 잠을 자는데, 작은 뱀이 방으로 스르르 들어온다.


그는 벌떡 일어나 작은 뱀의 목을 잡고 방 밖으로 휙 집어던진다. 뱀은 쭉 뻗어버린다.


그런데 잠시 후 좀 더 큰 뱀이 스르르 들어온다. 그는 이번에도 뱀의 목을 잡고 방밖으로 세게 집어 던진다.

점점 더 큰 뱀이 들어오다 나중에는 사람보다 훨씬 큰 구렁이가 들어온다. 그의 몸을 칭칭 감는다. 그는 악! 비명을 지르며 깨어난다.


내가 나를 이길 수는 없는 것이다. 무심히 받아들여야 한다. 평소에 미워했던 사람들이 다 나의 어두운 모습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장자의 가르침을 배워야 한다. 분별지(分別知)를 넘어서야 한다. 심재좌망, 마음을 가다듬고 다 잊고 앉아 있어야 한다.


인간의 고통의 근원은 분별지에 있다. 세상을 둘로 나눠 보는 마음. 선하다- 악하다, 높다- 낮다, 귀하다- 천하다...... .


우리는 무엇을 봐도 두 개로 나눠본다. 자신에게 나쁜 모습들이 있으면 마음 깊은 곳에 꽁꽁 숨긴다.


다른 사람에게 그런 모습들이 보이면 불같이 화를 낸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나쁜 점을 남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들이 져야 할 짐을 남들에게 떠넘기고 살아가기에, 이 세상은 아수라장이 된다.


우리는 화와 분노의 마음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화와 분노의 불길이 솟아오를 때, 불씨의 근원을 찾아내야 한다.


남에게 뒤집어씌우는 화와 분노가 아닌 ‘거룩한 화와 분노’도 있다. 우리의 본성(本性)에는 시비지심(是非之心), 옳고 그름을 아는 지혜가 있다.


우리의 본성은 잘못된 것을 보면 화와 분노가 일어난다. 이 화와 분노가 잘못된 세상을 바로잡는다.


무조건 화와 분노를 내 탓으로 돌리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화를 내고 분노를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그림자들을 투사하기가 쉽다.


항상 마음을 가다듬고 고요히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아야 한다. 나의 어두운 모습을 남에게 전가한 것들을 알아차려야 한다.


그런데, 우리 마음 안에는 ‘야수’도 있다. 우리가 인간으로 진화했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동물성, 그 야수가 마음 밖으로 뛰쳐나올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갑자기 사람이 악마, 사탄이 된다. 그런 악마, 사탄은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심재좌망, 마음을 다 비우고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한다. 우리 안의 ‘큰 나’가 해결하게 놔두어야 한다.


우리의 무의식에는 우주와 통하는 마음이 있다. 우주가 나를 도와줄 것이다. 나는 나를 다 비우고 기다리면 된다.



몸이 가느다란 것은 어디에 마음을 숨기나

실핏줄 같은 이파리로

아무리 작게 웃어도 다 들키고 만다

오장육부가 이랴

기척만 내도 전 체중이 흔들리는

〔......〕

코스모스의 중심은 흔들림이다

흔들리지 않았다면 결코 몰랐을 중심,

중심이 없었으면 그 역시 몰랐을 흔들림,

아무것도 숨길 수 없는 마른 체형이

저보다 더 무거운 걸 숨기고 있다


- 이규리, <코스모스는 아무 것도 숨기지 않는다> 부분



우리도 코스모스처럼 가늘게 살아야 한다.


가늘게 살아야, 아무 것도 숨기지 않고 흔들리면서 자신의 중심을 지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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