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팽창(自我膨脹)

by 고석근

자아팽창(自我膨脹)


그대 앞에 놓인 길이 분명히 보인다면 그것은 아마 다른 사람의 길일 것이다. - 조셉 캠벨



TV 드라마 ‘왜 오수재인가’에는 권력의 꼭대기를 향해 올라가다 좌절하여 자살하는 유명 대형 로펌의 대표가 나온다.


그는 항상 1등이었다. 전교 1등, 전국 1등, 1등의 좁은 길을 따라 올라가 검사가 되고, 대형 로펌의 대표가 되면서 권력 1인자의 꿈을 꾸게 되었다.


그는 인간 세상은 약육강식의 정글이라고 배웠고, 자신은 당연히 먹이 사슬의 맨 꼭대기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애벌레들의 행렬에서 항상 맨 앞에서 고물고물 기어가는 그, 그의 앞에는 항상 광활한 대지가 펼쳐졌을 것이다.

어른 애벌레가 되어 다른 애벌레들을 짓밟고 올라갈 때, 그는 푸른 창공의 자유로운 공기를 느꼈을 것이다.


애벌레들이 기어오르며 쌓은 기둥의 맨 꼭대기는 하늘처럼 높아보였을 것이다. ‘나는 조만간 하늘이 되는 거야!’


미국의 동화작가 트리나 폴러스가 지은 ‘꽃들에게 희망을’에서는 애벌레들의 기둥을 기어오르던 한 줄무늬 애벌레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한다.


“내가 이 세상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는 무작정 길을 떠난다.


그런데, 왜 그 로펌 대표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지 않고 오로지 한길을 걸어갔을까?


그도 어느 날, 무작정 로펌을 떠나고 싶은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성으로 단련된 사람이라, 강력한 이성의 힘으로 자신의 헛된 생각을 강하게 억눌렀을 것이다.


‘고지가 멀지 않았어.’ 그가 항상 1등만 하지 않았다면, 1등에서 추락한 세상을 보았다면, 다른 삶도 상상해 볼 수 있었을 텐데.


온갖 권모술수로 다른 애벌레들을 짓밟고 올라간 자신의 자리, 통유리를 통해 훤히 보이는 청와대.


분석심리학의 창시자인 칼 융이라면 그의 마음 상태를 ‘자아팽창(ego inflation)’으로 설명할 것이다.


자아가 한껏 풍선처럼 부풀어 있는 것이다. 조금만 날카로운 것에 닿아도 펑 터지고 만다.


우글쭈글한 살가죽만 남는다. 사람들은 경악할 것이다. “아니, 저 사람이 원래 저런 모습이었어?”


인간의 마음은 크게 의식과 무의식으로 나눠진다. 의식의 중심에 자아가 있다. 나라는 의식을 가진 마음이다.

이 자아가 실제 이상으로 부풀려지면, 그 사람은 우쭐대고 거만해진다. 경제에서 말하는 통화팽창(inflation)과 비슷한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시중에 돈이 마구 풀리게 되면, 아파트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구쳐 오른다. 사람들은 영혼까지 끌어와 아파트를 산다.


그러다 한순간에 펑 터진다. 아파트들이 허공에서 마구 떨어져 내린다. 사람들의 영혼까지 뚝뚝 떨어져 내린다.


그 로펌 대표는 자살로 자신의 패배한 삶을 마감하려 한다. 하지만 그걸로 끝일까? 인간의 무의식에는 진짜 나, ‘자기(self)’가 있다.


애벌레들이 번데기가 되고 하늘로 날아오르게 하는 힘이다. 하늘의 큰 기운과 하나인 기운이다.


그 로펌 대표는 죽어가면서 자기를 만날 것이다. ‘아, 잘못 살았구나!’ 지옥의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자신의 전 인생이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릴 것이다. 끝이 나쁘면 모든 게 나쁘게 된다.


우리 사회는 자아가 네 전부라고 우리에게 늘 속삭인다. 우리는 모두 그 로펌 대표와 별반 다르지 않는 삶을 살다간다.



왜 너는 도쿄 대학에 갈 생각을 않느냐고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물었다

저는 와세다 대학에 가고 싶습니다 라고 대답했지만

그 때 나는

키에르케고르 전집을 읽기 시작했기 때문에

이미 시험 공부할 사이가 없었다.


왜 너는 대학을 그만 두냐고

대학 3학년 때 아버지는 물었다

나는 방자하게도

입학할 때부터 졸업할 생각이 없었고

졸업장 갖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비겁한 사람이나 하는 일이고

중학교만 졸업한

아버지의 길에도 거스르는 일이라고 대답했다


〔......〕


왜 너는

도쿄를 버리고 이런 섬에 왔느냐고

섬 사람들이 수도 없이 물었다

여기에는 바다도 있고 산도 있고

무엇보다도 수령이 7천 2백년이나 된다는 죠몬 삼나무가

이 섬의 산 속에 절로 나서 자라고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지만

그것은 정말 그랬다

죠몬 삼나무의 영혼이

이 약하고 가난하고 자아와 욕망만이 비대해진 나를

이 섬에 와서 다시 시작해 보라고 불러 주었던 것이다


- 야마오 산세이, <왜ㅡ 아버지께> 부분



시인도 공부를 잘했나 보다. ‘왜 너는 도쿄 대학에 갈 생각을 않느냐고’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물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늘 무작정 떠났다. 그는 이따금 하늘로 날아올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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