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응보(因果應報)

by 고석근

인과응보(因果應報)


세상에서 가장 고통 받는 동물이 웃음을 발명했다. - 프리드리히 니체



석가는 말년에 몸이 아픈 적이 있었다. 제자들은 경악했다. “헉! 해탈하신 부처님이 아프시다니!”


석가는 제자들에게 말했다. “내가 아픈 것은 오랜 과거의 업(業) 때문이다. 해탈을 해도 업보(業報)를 피할 수는 없다.”


석가는 해탈했지만, 육체를 가진 인간이다. 물질인 육체는 ‘인과(원인과 결과)의 법칙’에 의해 움직인다.


하지만 인간의 육체는 사실 물질이 아니라, 현대양자물리학에서 말하는 에너지장(場)이다.


물질을 자세히 관찰하면, 원자로 구성되어 있고 원자는 더 작은 미립자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미립자들의 세계는 텅 비어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다. 색(물질)과 공(에너지장)은 하나인 것이다.

석가가 깨달은 것은 자신의 육체가 물질이지만, 실상은 에너지장이라는 것이다. 에너지장은 영원한 파동이다.

태어남도 죽음도 없는 우주의 춤이다. 우리가 가장 신날 때, 누구나 그 세계 속에 들어간다. 바람처럼 가볍게 춤을 출 뿐이다.


나는 석가가 깨달은 경지를 요가와 명상을 통해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요가를 하며 명상을 하며 나는 서서히 내 육체가 에너지장이라는 것이 느껴간다.


텅 빈 충만, 나는 오로지 존재한다. 찰나가 영원인 상태다. 하지만 명상에서 깨어나면 나는 육체로 돌아온다.


육체를 가진 나는 내 삶의 인과법칙 속에 있다. 내게는 어떤 업보가 있을까? 나는 젊을 적에 내 눈이 항상 무언가를 갈구하는 눈빛이라는 말을 가끔 들었다.


나는 오랫동안 갈구하는 눈빛의 정체에 대해 생각해 왔다. 세 살 이전까지의 커다란 마음의 상처가 시원이었다.

그때 나는 어린 아이가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두어 번 처해졌었다. 그 트라우마가 지금도 내 가슴에 돌덩이처럼 얹혀있다는 것을 느낀다.


나는 자라면서 유치한 장난을 좋아했다. 트라우마를 견디기 위해 나도 모르게 나온 유치한 몸짓들이 아니었을까?


그 장난의 희생양들은 내게 화를 냈다. 나의 유치한 장난들은 내가 나의 감성을 제대로 돌보지 않아 나온 감상적인 행동들이었다.


오래 전에 고향 친구와 술집에 갔다가 낯선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그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신나게 노래를 불렀다.


나는 그들에게 헤헤거리며 유치한 장난을 쳤다. 고향 친구가 나의 팔을 끌고 밖으로 나왔다.


“야, 임마! 그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아? 이 지역의 조폭들이야!” “헉!” 나는 술이 확 깼다.


나는 나의 유치한 행동들을 나의 육체가 소멸할 때까지 안고 가야 할 것이다. 어릴 적 받아보지 못한 사랑을 아무나 붙잡고 갈구하는 내 안에서 항상 소리 없이 울고 있는 아이.


나의 이성이 조금만 방심하면 툭 튀어나오는 작은 아이, 나는 한평생 그 아이를 가슴에 품고 보듬어야 할 것이다.


나는 가끔 같은 꿈을 꾼다. ‘어? 또 여기에 왔네?’ 나는 꿈속에서도 꿈인 줄 알아차린다.


하지만 나는 곧 혼미한 꿈속 나라로 들어간다. 기암절벽의 큰 산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다.


그 아래 초가집들이 오순도순 모여 있는 옛 마을. 그런데 다 빈집이다. 아, 다 정겨운 집들이다.


내 안에는 세 살까지 자라다 만 작은 아이가 있다. 나의 작은 아이는 아직도 그 마을을 헤매고 있다.



빗방울 맞는 나무들은

아이 간지러워 아이 간지러워

몸을 비비 꼬고


〔......〕


빗방울 맞는 모래들은

아이 차가워 아이 차가워

토닥거리고


- 이기철, <빗방울> 부분



아버지 어머니가 안 계시는 텅 빈 마을을 혼자 아장아장 걸어 다니며 빗방울들과 나무들과 모래와 어울려 노는 작은 아이가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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