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면수심(人面獸心)
나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창작을 택했다. - 알베르 카뮈
요즘 코로나 19로 갑자기 시간이 많아졌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3부작을 분철하니 18 조각으로 나눠졌다. 누워서 읽기 시작했다. 내용은 대충 알고 있었기에 인물 하나하나의 마음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주요 등장인물이 소개되어 있다. 표도르 파블로비치 카라마조프,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중년의 지주.
드미트리, 표도르의 장남. 이반, 표도르의 차남. 알렉세이, 표도르의 삼남. 파벨 표도르비치 스메자르코프, 표도르의 사생아로서 하인 겸 요리사.
이들 네 부자가 펼치는 대하소설이다. 큰 강이 굽이굽이 흐르듯, 이들 네 부자의 인생사가 하나의 강물이 되어 굽이굽이 흐른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저자는 한 인간에 대해 평가하지 않다. 인간의 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줄 뿐이다.
겉으로는 개차반 같은 인생들인데, 아버지 표도르와 장남 드미트리에 대한 미움이 생겨나지 않는다.
냉철한 이성의 차남 이반, 그의 마음에도 호불호가 없다. 알렉세이에게도 결코 호감이 가지 않는다.
그의 깊은 마음속에서 들끓는 마그마를 나는 잘 알기 때문이다. 언제 폭발하여 세상을 다 태워버릴지 모른다.
이들 가족의 이야기를 어느 가족에 대비해도 맞지 않을까?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여도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모든 가족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이들처럼 앓고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말했다. “악인을 비난하기란 쉽지만 이해하기란 너무도 어렵다.” 나는 이 말을 이해하는데, 수십 년이 걸렸다.
나이 50이 넘어 내가 표도르이고 드미트리이고 이반이고 알렉세이이고 스메자르코프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비로소 이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30대 중반에 자유인이 되어 세상을 떠돌면서, 내 안에 있는 ‘악’을 발견한 게 내 인생의 가장 큰 성과라는 생각이 든다.
시골에 살 때, 개를 여러 마리 길렀다. 그런데 그 중의 한 마리가 유난히 성가셨다. 오리들을 마구 쫓아가 물어 죽이기도 했다.
나는 그 개에게 다시는 그러지 못하게 혼을 내주었다. 그런데 그 개가 내게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더 무서운 얼굴로 화를 내고 그 개는 허연 이빨을 드러내고 더 크게 으르렁거렸다.
나는 몽둥이를 들고 그 개를 어르기 시작했다. 금방 고분고분해질 줄 알았다. 오! 맙소사 그 개는 야수로 돌아간 듯 했다.
결국 내 몽둥이가 대드는 그를 향해 내리치게 되고, 결국엔 그 개는 다리를 쭉 뻗으며 죽게 되었다.
아, 내 안에서 불이 일어난 듯했다. 불은 끝없이 타오르다 사그라졌다. 나는 그 뒤 내 안에 있는 악의 근원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희미하게 기억에 나는 것들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유아시절 세입자의 맏아들로 살아가면서 항상 움츠려야 했던 기억들을 회상해냈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어둑한 교무실 뒤에서 급식으로 받은 옥수수 죽을 쭈그려 앉아 먹는 까만 시골 아이가 선명하게 보였다.
그 후 계속하여 내 안에 켜켜이 쌓여간 상처들, 그 상처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는 안다. 그 상처들은 절대 사라지지 않고 내 안에서 독사처럼 똬리를 틀고 있다는 것을.
딱딱하게 굳은 얼굴 표정과 몸짓으로 그것들을 꼭꼭 억눌렀지만, 그것들은 결코 고분고분하게 어둠 속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그들은 내 안에 있는 냉정함을 알고 있었다. 그 냉정함이 만만하게 보이는 것들에게는 화산처럼 폭발했을 것이다.
전쟁터에서 보이는 군인들의 잔인함은 언젠가 그들의 마음속에 쌓인 분노들의 표출일 것이다.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소설가인 알베르 카뮈는 말했다. “나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창작을 택했다.”
나도 범죄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글을 쓴다. 내 안으로 들어온 분노들이 더 이상 괴물로 변신하지 않기를.
나는 한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내 분노들이 바람이 되어 허공으로 훨훨 날아가기를.
나를 오랫동안 몸주로 삼았던 분노들이여, 부디 스스로의 길을 가시라! 내 안의 짐승들과 결별하시라.
늑골에 숨어 살던 승냥이
목젖에 붙어 있던 뻐꾸기
뼛속에 구멍을 파던 딱따구리
꾸불꾸불한 내장에 웅크리고 있던 하이에나
어느 날 온몸 구석구석에 살고 있던 짐승들이
일제히 나와서 울부짖을 때가 있다
- 권대웅, <내 몸에 짐승들이> 부분
‘어느 날 온몸 구석구석에 살고 있던 짐승들이/ 일제히 나와서 울부짖을 때가 있다’
조용히 우리는 우리 안의 짐승들이 밖으로 나와 울부짖는 모습을 바라보아야 한다.
인면수심은 인간의 숙명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