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아일체(物我一體)

by 고석근

물아일체(物我一體)


땅과 태양과 동물들을 사랑하라. 부를 경멸하라. 당신의 영혼을 모욕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멀리하라. - 월트 휘트먼



시골에 살 때였다. 초등학생 2학년 여자 아이가 새끼 강아지들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사나운 개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을 보았다.


그 아이에 대해 경외감이 느껴졌었다. 어미 개는 어린 새끼 강아지들과 함께 있을 때는 극도로 예민하다.


그 개는 어린 여자 아이에게서 전혀 두려움을 느끼지 않은 것이다. 동물적 감각에 의해 그들은 서로를 신뢰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한참을 보고 있자 어미 개의 눈초리가 차츰 사나워졌다. 나는 부리나케 그 자리를 피했다.


언젠가는 어린이집에 다니는 우리 집 둘째 아이가 토끼에게 풀을 먹이며 뭐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의 평화스러운 모습에서 나는 둘째 아이가 토끼와 하나의 마음이 되어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날, 토끼들이 토끼장을 찢고 도망간 적이 있다. 나는 온 집안을 뒤져서 토끼들을 찾아냈다.


토끼들을 토끼장에 가두고, 초등학교 1학년인 첫째 아이를 기다려 보기로 했다. 아이의 생각이 궁금했다.


나는 큰 아이가 집에 오자마자, 물었다. “현웅아, 토끼들이 토끼장의 철망을 찢고 도망갔어. 어떻게 할까? 다 잡아 먹을까? 새로 집을 지을까?”


역시 아이의 대답은 상상 이상의 것이었다. “토끼들을 산에서 살게 하면 되잖아, 아빠.”


‘그렇다. 토끼들은 산에서 살게 하는 게 맞지? 왜 인간이 자기들끼리 잘 살고 있는 토끼들을 잡아와 우리에 가두는 거야?’


물론 나는 토끼들을 산으로 보내지 않았다. 하지만 어른이 된 나는 항상 아이의 마음에서 인간의 원초적 마음을 읽으려 한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되기 전, 삼라만상이 하나의 가족으로 살아가던 그 때가 우리 마음의 고향일 것이다.


신화학자 조셉 캡벨은 그의 저서 ‘블리스로 가는 길’에서 미국 몬태나 주의 원주민 블랙풋족의 들소 신화를 들려준다.


블랙풋족은 들소를 절벽으로 몰아가서 아래로 떨어뜨려 도축을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들소 무리를 절벽으로 모는 일이 불가능해졌다.


들소들이 절벽을 피해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모두 굶어죽을 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소녀가 절벽 위를 보며 무심코 말했다.


“너희들이 절벽에서 뛰어내려 준다면 누구라도 원하면 내가 결혼을 해줄게.”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들소들이 너도나도 우르르 몰려가더니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는 것이 아닌가? 곧 우두머리 들소가 소녀에게 다가와 말했다.


“자, 이제 나와 같이 가자.” 소녀는 말했다. “안 돼요. 싫어요.” 들소들은 소녀를 데리고 떠났다.


소녀가 보이지 않자 아버지가 딸을 찾아 길을 나섰다. 아버지가 들소 무리 속에 있는 소녀를 발견하고 다가가자 들소들이 춤을 추웠다.


아버지는 들소들의 발에 짓밟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소녀는 까치가 찾아준 아버지의 등뼈 조각을 담요로 덮고 마법의 노래를 불렀다.


죽었던 아버지가 되살아나자 들소들이 소녀에게 말했다. “너희가 우리를 죽였을 때에도 우리를 위해 이처럼 해주지 않겠는가?”


그래서 들소 사회와 인간 사회 사이에 협정이 맺어졌다. 블랙풋족은 들소를 사냥하고 나서 들소 춤을 추었다.

이런 의례에 의해 동물들은 자발적으로 목숨을 내놓는 것이 되었다. 들소들의 피는 대지에 뿌려졌다. 대지로 돌아간 들소들의 피는 다시 들소로 되살아났다.


우주 차원에서 보면, 먹는 자와 먹히는 자가 구별되지 않는다. 모든 생명체는 서로의 살을 나누는 관계다.


우주는 거대한 하나의 생명체다. 사자가 먹을 만큼만 얼룩말을 사냥하듯이, 원시인들도 신화와 의례를 통해 먹을 만큼만 사냥을 했다.


물아일체, 자연과 인간은 오랫동안 하나가 되어 살아왔다. 이 마음을 잃어버린 현대사회는 풍전등화다.


한 아이가 물었다, 풀잎이 뭐예요?

손안 가득 그것을 가져와 내밀면서.

내가 그 애에게 무어라 답할 수 있을까,

그것이 무엇인지 그애가 알지 못하듯

나도 알지 못하는데.


〔......〕


젊은이들과 할아버지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할머니들과 갓난아기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들은 어디엔가 살아 있을 거요.

조그만 풀잎조차도 죽음은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소!

죽음은 있다고 해도 생명으로 인도해 갈 뿐,

생명을 삼키려고 기다리고 있는 것 아니오.

생명이 나타나면 죽음은 사라지는 것이며,

만물은 앞으로 멀리까지 나아가고 종말은 없는 것이오.

그래서 죽음이란 보통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더 행복한 것이오.


- 월트 휘트먼, <풀잎> 부분


시인은 풀잎의 말을 듣고 우리에게 전해준다.


‘조그만 풀잎조차도 죽음은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소!’


‘죽음은 있다고 해도 생명으로 인도해 갈 뿐,/ 생명을 삼키려고 기다리고 있는 것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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