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도생(各自圖生)
선한 눈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어 보일만큼,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탐욕과 시기에 가득 찬 악한 눈이다. - 자크 라캉
인간은 수 만년 동안 부족국가를 이루고 살았다. 부족 전체가 하나의 가족이었기에 사랑 가득한 평등의 세상이었다.
이때는 다른 부족에 대한 정복 전쟁이 없었다고 한다. 무기는 석기였기에 부족 간의 전쟁은 소규모였다고 한다.
사냥을 하다 충돌하여 전쟁을 하더라도 전면전으로 확대되지는 않았다. 복수를 하더라도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었다.
당한만큼만 보복을 했다. 그 당시의 전쟁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치열한 전투 상황에서 한 군사가 소리쳤다.
“이번에는 내가 화살을 쏠 차례야!” 상대방이 주춤하는 사이에 화살을 쏘아 적을 죽였다.
화살을 번갈아 쏘는 전쟁, 지금 같으면 상상이 되지 않을 것이다. 현대문명인은 ‘바보같이... .’라고 생각할 것이다.
강을 사이에 두고 두 부족 간의 전쟁이 일어났는데, 한 떼의 군사들이 상대방의 군사들이 강을 다 건널 때까지 산기슭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전쟁터에서도 아름다운 규칙을 지켰던 멋진 원시인들, 어떻게 하여 원시인들은 이리도 품격이 있었을까?
아마 오랫동안 부족사회를 이루고 있어서일 것이다. 수만 년 동안 가족의 품에서 살다보면, 인간은 사랑을 알게 된다.
부끄러운 행동은 차마 하지 못하게 된다. 끈끈한 가족 간의 사랑이 몸에 베이게 되는 것이다.
삶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공동체에서 한 개인의 비인간적인 행동은 자연스레 제어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품성을 지닌 원시인들은 다른 부족에 대해서도 품격 있는 행동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부족사회의 가장 중요한 윤리, 도덕은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였다.
그러다 철기기 등장하면서 부족들 간의 치열한 정복전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철제 무기로 무장한 부족은 석기를 사용하는 부족을 정복하여 노예로 삼았다.
철제 농기구는 척박한 땅도 개간할 수가 있었다. 광활한 땅을 소유한 대제국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진시황, 이집트의 파라오, 그리스에서 출발해 대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더 등 지구 곳곳에는 절대 권력자들이 출현하게 되었다.
이제 부족은 더 이상 울타리가 되지 못했다. 아무도 ‘나’를 보호해주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각자도생, 각자 제 살길을 찾아가는 생존법이 등장한 것이다. 권모술수가 삶의 지혜로 통하게 되었다.
이제 인간은 극악한 짐승이 되어갔다. 이때 등장한 성현(聖賢)들, 그들은 ‘인간의 본성(本性)을 깨워야 한다’고 가르쳤다.
하지만 각자도생의 세상에서 사람들은 본성을 깨우기보다 본능(本能)대로 살아가기 시작했다.
부족 국가시대에는 공동체에 의해 본능이 억제될 수 있었지만, 철기시대가 도래하며 인간의 동물적 본능은 마구 분출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본성이 있다. 동물에서 인간으로 진화하면서 획득된 능력,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는 공감의 능력. 이 마음으로 인간은 찬란한 문명의 꽃을 피웠다.
코로나 19, 기후위기는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처럼 본능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갈 것인가? 본성의 소리를 들으며 살아갈 것인가?”
뽀드득 뽀드득
새하얀 순결 훔치며 걸어가는 발자국들
새하얗게 생긴 것은 무엇이든 다 먹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직립동물의 코끝 매운 탐욕들
그래도 하, 하, 하,
쌓이며 활짝 웃는 눈, 눈, 눈, 착한 함박눈
- 김상미, <함박눈> 부분
거대한 자연 앞에서 인간의 한줌 밖에 되지 않는 탐욕은 결국 사라지고 말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탐욕만 사라지게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