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심소욕(從心所欲)
큰 인물이란 어린 아이 같은 천진한 마음을 잃지 않은 사람이다. - 맹자
초등학교 동창회 모임에 갔더니 한 회원이 푸념을 했다. 아들이 자신의 남동생의 아들 결혼식에 가지 않겠다고 한단다.
그럴 때 누구나 마음이 상할 것이다. 결혼식은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 사람이 살아가면서 치르게 되는 큰 행사가 아닌가?
그래서 그녀는 아들에게 간곡히 얘기했단다. 일생에 단 한번밖에 없는 사촌의 결혼식이 아니냐?
왜, 아빠 형제 사촌들 결혼식에는 가면서 엄마 형제 사촌들 견혼식에는 가지 않는 것이냐?
그녀의 말은 구절구절 다 맞지만, 아들은 끝내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단다. 아들의 변명을 들어보니, 어릴 적에 외삼촌에게서 크게 마음의 상처를 받았더란다.
나는 그녀의 푸념을 들으며 아득히 먼 나의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마을 앞 냇가 모래밭에서 한 살 많은 고종 사촌형과 신나게 놀고 있었다.
해가 중천에 떴을 때, 사촌형이 자신의 집에 같이 가서 점심을 먹자고 했다. 나는 염치 불고하고 따라나섰다.
그 당시 한 끼 때우는 게 어딘가? 항상 배가 고픈 시절이었다. 그래도 고모님 댁은 먹고 살만했다.
언제나 먹을 게 푸짐하게 나왔다. 나는 기대를 하며 고모님과 고모부님에게 인사를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오! 내가 좋아하는 칼국수였다. 향긋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자리에 앉는데, 바지에서 모래가 떨어져 내렸다.
나는 무심한 척 앉았는데, 고모부님이 혼잣말을 했다. 나를 힐난하는 목소리였다. 나는 못 들은 채 국수를 입안에 가득 넣었다.
눈물 젖은 국수였다. 반백년 이상의 세월이 흘러갔지만, 그 때의 나의 격한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자존심보다 배를 채우는 게 먼저였던 시절이었다. 그 뒤에도 고모부님에 대한 악감정이 있다.
깊은 잠에 빠져있던 나는 큰 소리로 떠드는 소란에 잠이 깼다. 고모부님이 아버지에게 고모님을 찾아내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응? 고모님이 집을 나가셨나 보네. 우리 가족은 모두 깨어 조용히 고모부님의 큰 소리를 들어야 했다.
이런 악감정이 있는 상태에서 사촌들과도 사이가 나빴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도 고모님 댁의 인륜지대사에 참석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 동창에게 아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아들도 이제 성인이니 그 무엇도 강요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 아들이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후회는 아들의 마음을 성숙시켜 줄 것이다.
마지못해 견혼식에 참석한다면, 그 아들의 마음은 성숙하기 힘들 것이다. 인간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지혜롭게 된다.
머리로 아는 지식은 지혜가 되지 않는다. 나는 그 아들처럼 자기주장이 강한 요즘 젊은이들에게 믿음이 간다.
비록 그들이 지금은 치기 어린 행동을 하겠지만, 그들의 마음은 반드시 성숙하게 되어 있다.
공자는 나이 70이 되어 말했다. “마음이 가는 대로 하여도 도리에 어긋나는 것이 없다. 종심소욕 불유구 從心所欲 不踰矩.”
불유구. 얼마나 멋진 경지인가! 마음대로 해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다니!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 불유구의 경지에 도달하려면, 종심소욕, 마음이 가는 대로 사는 것부터 먼저 해야 한다는 것을.
항상 세상에 맞춰 살아가는 사람은 나이 70이 되어도 세상의 눈치를 보고 살아가야 한다. 그 때는 자신의 마음이 어떤지 조차 모를 테니까.
돌로 눌러 놓았다
깜깜한 밑에서
노랗게 자기를 써 나갔다
- 이안, <마음 하나> 부분
시인은 마음은 눌러 놓는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걸 안다. ‘깜깜한 밑에서/ 노랗게 자기를 써 나갔다.’
그 어둠 속의 마음은 우리가 통제할 수가 없게 된다. 불쑥 튀어나와 우리를 마음대로 조종한다.
일생일장춘몽(人生一場春夢)이 된다. 인생이 한바탕 긴 봄날의 꿈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