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원이덕(報怨以德)
눈(目)이 아닌 배(復)로 보라. - 노자
배은망덕(背恩忘德)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남한테 입은 은덕을 잊고 저버린다는 뜻이다.
이런 사람을 소인배라고 한다. 그럼 소인배와 반대인 대인, 군자는 어떨까? 그들은 보원이덕, 원한을 덕으로 갚는 사람이다.
덕(德)의 유무가 소인과 대인을 가르는 기준이 된다. 덕은 무엇일까? 우리는 다 알고 있다.
덕 있는 사람의 행위를. 자신이 많이 가진 것을 남에게 나눠주는 것,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 높은 자리에 있을 때 스스로를 낮추는 것... .
이런 행위들을 잘 살펴보면, 도(道)에 맞는 행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도는 천지자연의 이치를 말한다.
천지자연은 어떤 법칙에 의해 움직인다. 그 법칙에 자신의 삶을 맞추는 행위, 이게 바로 덕이다.
노자의 도덕경은 도경과 덕경이 합쳐진 책이다. 천지만물은 자신이 많아 가진 것을 다른 사물들에게 나눠준다.
가을 산에 올라가 보면, 나무들이 자신들이 가진 나뭇잎들을 우수수 땅으로 떨어뜨린다.
땅은 그 나뭇잎들을 품는다. 나뭇잎들은 서서히 영양분으로 화한다. 다음 해 봄이 오면 나무들은 그 영양분으로 잎을 틔우고 열매를 맺는다.
물은 어떤가? 항상 낮은 곳으로 흐른다. 그리하여 만물을 살려낸다. 하지만 올라가야 한다. 햇살의 뜨거운 기운으로 하늘로 올라가 구름이 된다.
때가 되면 구름은 땅으로 빗방울이 되어 떨어진다. 높은 곳에 있는 물은 아래로, 아래에 있는 물은 위로 올라가는 게 물의 이치다.
우리는 나무와 물의 움직임을 살펴보면서 천지만물의 이치가 상생(相生), 서로를 살리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덕이란 이런 이치에 맞게 사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남에게 자신이 많이 가진 것을 나눠주는 사람, 높은 곳에
올라간 사람이 스스로를 낮추는 사람은 덕 있는 사람이다.
인간에게는 다른 동물에게는 없는 ‘자아’가 있다. 자아는 세상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나다.
남자, 여자, 남편, 아내, 회장, 부장, 공무원, 회사원... . 그 역할은 일종의 연극의 배역 같은 건데, 우리는 이 역할이 자신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그래서 우리는 이 자아를 온 힘을 다해 지키려한다. 그러다보면, 이 세상의 도, 이치를 잊기 쉽다.
덕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열심히 산 것 같은데, 자신을 잘 살펴보면, 소인배의 삶이다.
항상 자신을 살펴보아야 하는 것은, 자아를 가진 인간의 숙명이다. 자신을 살펴보다보면, 자신의 마음이 보이고 남의 마음도 보인다.
인간의 마음의 이치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 이치에 맞게 살아가는 사람은 덕 있는 사람, 대인, 군자가 된다.
우리 마음에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복수심이 있다. 오랜 원시부족사회에서 형성된 인간의 마음이다.
부족사회는 자신들의 부족을 지키기 위해 다른 부족이 눈을 상하게 하면 눈을 공격하고, 이를 상하게 하면 이를 공격했다.
이런 습성이 우리에게 남아 있다. 지금 우리는 세계가 하나가 되어 있는 지구촌에 살고 있다.
부족사회가 합쳐져 대제국이 만들어질 때, 성인(聖人)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쳤다.
원한을 원한으로 갚으면, 부족을 넘어서는 대제국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원한을 덕으로 갚아라!’는 것은 이 세상의 삶의 이치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세계의 모든 사람이 하나의 가족, 세계시민이 되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인류가 하나의 가족이 되면, 서로의 원한을 당연히 덕으로 갚게 된다. 우리가 지금 맞닥뜨리고 있는 모든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과의 장벽을 쌓고 나서
나는 나 자신과의 장벽을 쌓고 싶어졌다
- 이오시프 브로드스키, <장벽을 쌓고 나서> 부분
모든 인간이 하나의 가족이 된 시대에, 사람들과의 장벽을 쌓고 나면, 결국 자신과도 장벽을 쌓게 된다.
모든 인간이 나이고 너이고 우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온갖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