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즉시공(色卽是空)

by 고석근

색즉시공(色卽是空)


지금 내가 지니고 있는 이 모습은 ‘나’라는 존재의 궁극적인 모습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이미 성취한 ‘자기성(자아)’을 끊임없이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 조셉 켐벨



우리 아이들이 나를 “아빠!”하고 부를 때, 기분이 묘해진다. 내가 갑자기 쑤욱 큰다. ‘큰 나’가 된다.


나는 아이들을 위해 무엇이라도 다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실제로 부모들은 자식을 위해 헌신한다.


‘아빠’라는 이름은 오랜 세월을 거치며 나에게로 왔다. 수많은 아빠들은 죽었지만, 그들은 나에게서 부활한다.


내 안에 ‘아빠’가 잠자고 있다. 누가 “아빠!”하고 이름을 부르면, 그는 후닥닥 깨어난다.


나는 한순간에 아빠가 된다. 나라는 인간에서 나는 한순간에 아빠라는 신이 되는 것이다.


신은 오랜 세월의 무게를 견디며 우리 안에 ‘원형(原型, archetype)’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닮고 싶은 사람들을 만난다. 우리는 이들을 닮아가며 마음과 몸이 성숙해진다.


많은 사람들이 닮고 싶은 사람은 원형이 된다. 그들의 이야기는 신화가 된다. 이들은 신화 속의 이야기로 남아 있고, 우리 마음의 깊은 집단무의식에도 있다.


따라서 인간은 누구나 신이 될 수 있다. 그의 곁에서 누가 그의 안에 있는 신들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하면.

지금 이 순간에도 신화는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는 옛 신화나 민담, 설화, 전래동화, 시, 소설, 수필을 읽을 때 가슴이 뭉클해질 때가 있다.


우리 안의 신이 깨어나는 순간이다. 언젠가는 그 신들이 우리의 삶을 인도할 때가 온다.


가야만 하는 길, 갈 수밖에 없는 길. 우리가 그 길을 갈 때 우리는 자신의 신화 속으로 들어간다.


어릴 때 윗마을에 있는 큰 기와집을 자주 봤었다. 항상 텅 비어 있었다. ‘왜 사람들이 살지 않을까?’


저 좋은 집이 덩그러니 빈집으로 있다니! 나중에 알았다. 소설을 쓰는 막내아우가 알아봤단다.


명문가 풍양 조씨의 집인데, 일제강점기에 다섯 형제가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가산을 정리하고 집을 떠났단다.


그들은 그 후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아, 그래서 빈집이었구나!’ 그 엄혹한 시기에 이런 양반들이 있었구나!


그들은 유학자의 길을 갔던 것이다. 공부하여 출세, 세상에 나가는 것. 세상이 어지러울 때, 그들은 세상을 바로잡으러 집을 떠났던 것이다.


지금은 출세라는 말이 세상에서 잘 나가는 것으로 쓰이는데, 원래의 뜻은 세상에 나가 자신의 몫을 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유교의 근본 가르침이다. 공부하여 남 주는 것. 그런데 이 말이 이제는 공부하여 잘 먹고 잘 사는 것으로 왜곡되어버렸다.


조선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러한 신화가 된 유학자들이 많다. 인간이면서 신의 삶을 사는 것.


이러한 삶이 인간의 가장 멋진 삶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실상은 ‘색즉시공 공즉시색 色卽是空 空卽是色’이기 때문이다.


색(色)은 물질을 말한다. 인간은 육체를 가졌으니 당연히 육체의 삶을 원한다. 하지만 이 육체는 실체가 없다.


최첨단 현미경으로 육체를 살펴보면, 육체는 텅 비었다. 공(空)이다. 이 세상의 모든 물질은 에너지장이다.

그럼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자신의 육체로만 살아야 하나? 생로병사를 거치며 곧 사라질 육체로 살면서도 육체의 실체인 영원한 에너지장의 삶을 살 수는 없을까?


인간의 삶과 신적인 영원의 삶을 하나로 연결하는 게 신화다. 나로 살아가면서 동시에 신이 되는 삶.


우리가 멋진 삶을 보고 가슴이 뒬 때는, 육체이면서 동시에 에너지장의 세계 속으로 들어갈 때다.


가슴 뛰는 삶을 사는 것! 바로 인간이면서 신이 되는 것이고, 나의 신화를 만들어가는 삶이다.


최근에 ‘시시詩視한 인문학적 단상들- ‘생존’을 넘어 ‘삶’을 향한 인문 에세이’라는 책을 냈다.


내 책을 읽고 자신도 ‘생존’으로 허덕이던 삶에서 눈부신 ‘삶’의 빛과 향기를 내뿜는 삶을 살고 싶다는 분의 메일을 받았다. ‘아, 나는 지금 신화에 동참하고 있다!’


글쓰기의 가장 큰 보람이다. 우리는 이야기 속에서 하나로 어우러진다. 우리 모두 우주의 춤을 함께 추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인간의 모습을 하고서, 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신화 속의 인물인 것이다.



독자여, 뮤즈 시신의 뜻은

하나님의 뜻과 같아 나는 알 수가 없다.

나를 무대로 삼아 움직이는

저들의 깊은 책략을 나로서는 추측할 수가 없다.

나는 저들이 내 머리 속에서 춤추며 맺었다 풀었다

혹은 중단하는 대로 내버려둔다,

저들의 법을 쫓는 길 외에

별다른 무모한 일을 할 수 없기 때문.


- 장 콕도, <나의 시풍이......> 부분



시인은 ‘나의 시풍’이 뮤즈 시신의 뜻과 같아 자신도 알 수가 없다고 노래한다.


세상만사가 그렇다. 자신이 하는 게 뭐가 있는가? 우리는 어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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