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독존(唯我獨尊)

by 고석근

유아독존(唯我獨尊)


전체는 부분의 총화 그 이상의 것이다. - 위르겐 하버마스



횡단보도에 서 있는데, 갑자기 기계 경고음이 나온다. “차도는 위험하니 인도로 이동해 주십시오.” 반복한다.

갑자기 영국의 소설가 올더스 헉슬리의 미래 가상소설 ‘멋진 신세계’에 온 듯 온 몸이 오싹해진다.


‘나 지금 인도에 있단 말이야!’ 기계한테 화낼 수도 없고 속만 부글부글 끓이며 서 있었다.


그런데, ‘오! 맙소사!’ 한 남자가 형광색 조끼를 입고 허리를 구부린 채 인도와 차도 경계선에서 청소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가 구부정하게 서 있어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가 청소를 마치고 다른 곳으로 가서야 기계음은 멈췄다.

그는 기계의 경고음을 들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기계가 청소하는 사람을 알아보고 경고음을 내지 않게 하려면 설치비가 얼마나 들까?


시의원이나 시 공무원이 그런 업그레이드된 기계를 설치하려는 시도를 하게 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지금까지 그런 기계가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아마 다들 합의하고 있는 것 같다. 소수의 청소부를 위한 배려는 없다!


소중한 시민의 세금을 어떻게 소수를 위해 쓸 수 있단 말인가! 최대다수 최대행복을 위한 정책을 시행해야지.

예수는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섰다. 우리는 이러한 예수의 고귀한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왜 청소부를 위한 기계는 설치하지 않는가? 성인의 말씀은 말씀이고 현실은 현실인가?


이 시대의 지배적인 윤리는 공리주의다.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이 행복해야지. 소수는 다수를 위해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게 당연하지 않아?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양주는 말했다. “털 하나를 뽑아 온 천하가 이롭게 된다 하더라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발일모이리천하불위. 拔一毛而利天下不爲.”


극단적인 유아론(唯我論)이다. 이 말과 석가가 태어나자마자 일곱 걸음을 걷고 나서 읊었다던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은 어떻게 다를까?


그 정신은 같다고 생각한다. 나 한 사람이 지극히 소중하다는 것. 온 우주와도 바꿀 없을 만큼 귀중하다는 것.

기독교의 유일신(唯一神)도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온 우주가 하느님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예언자들에게는 모든 사람이 그의 가슴에 하느님처럼 소중하게 와 닿았지 않았을까?


원시인들의 정신은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였다. 문명인들은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로 끝난다.


왜 그럴까? 원시부족들은 부족 구성원 전체를 하나의 가족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에게 무한한 사랑을 베풀 수 있었다.


하지만 문명화된 인간사회에서는 자신의 가족 외의 인간들을 같은 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세계화가 된 이 시대에 모든 인류가 하나의 가족이 될 수는 없을까? 소설 ‘멋진 신세계’는 우리의 암울한 미래를 보여준다.


그 세계에는 고통이 없다. 언뜻 보면 불교에서 말하는 고(苦)가 사라진 세계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하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고는 우리가 생각하는 삶의 고통이 아니다. 고는 만족하지 못하는 고통을 말한다.

그래서 고통 없는 멋진 신세계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왜 인간은 고통 없는 세상이 되어도 만족하지 못할까?


인간은 단지 물질, 육체만으로 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육체는 동시에 에너지장이기 때문이다.


삼라만상은 하나의 에너지장이다. 원효가 말하는 일심(一心), 하나의 마음이다. 따라서 우리는 육체의 쾌락만으로는 만족이 되지 않는다.


현대 인류의 모든 고통은 우리 모두가 하나의 가족이 되어야 끝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온 우주만큼 소중하다는 정신의 대혁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천체가 굽는다,

완벽한 푸르름, 대낮 위에

찬연함은 굽는다, 둥글어진다

〔......〕

하늘 한가운데 매달린 해.

지금 모든 것은 현재, 현실.

나그네의 발밑에

지구 전체가 느껴진다


- 호르헤 기옌, <완벽> 부분



‘나그네의 발밑에/ 지구 전체가 느껴진다’


그가 오롯이 ‘지금 모든 것은 현재, 현실.’을 느낄 때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을 알아차리기만 하면, 이런 기적이 일어난다. 생생한 실재가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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