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신일여(心身一如)
혼백을 하나로 감싸 안고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할 수 있겠는가? 재영백포일(載營魄抱一) 능무리호(能無離乎) - 노자
우리는 경험적으로 ‘마음과 몸은 하나’라는 걸 잘 안다. 하지만, 살아가다보면 마음이 몸에서 자꾸만 떨어져 나간다.
몸은 여기 있는데, 어느 새 마음이 허공을 헤매고 있다. 정신이 번쩍 들어 다시 정신을 챙기게 된다.
하지만 마음은 수시로 밖으로 나가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 같다. 왜 그럴까?
고대의 현인 노자는 우리에게 말했다. ‘혼백을 하나로 감싸 안고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할 수 있겠는가?’
인간은 혼(魂)과 백(魄)으로 이루어져 있다. 혼은 정신적인 면을 관장하고, 백은 육체적인 기능을 주관한다.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마음은 육체의 내적 활동’이라고 말한다. 마음과 몸은 애초부터 하나라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동물에서 진화하면서, 자아가 생겨났다. 자의식, 자신을 아는 의식이다.
동물은 자의식이 없기에 온 몸으로 살아간다. 그래서 동물은 이 세상에 크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자아가 있어, 자아가 무한히 팽창할 수 있다. 자신을 굉장하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영화 밀양에서 이웃집 아이를 유괴하여 살해한 버스 운전사는 면회를 온 아이의 어머니에게 “자신은 하느님에게 구원을 받았다”고 말한다.
잠시만 방심하면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다. 자아에 갇힌 마음은 쉽게 몸을 떠나기 때문이다.
인간의 몸은 정직하지만, 몸을 떠난 마음은 마구 부풀려진다. 자신이 신이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실제로는 비참한 삶을 살면서도 온갖 ‘정신승리법’을 쓰기도 한다. 그래서 인간 세상을 잘 살펴보면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다.
우리는 노자의 가르침대로 항상 마음과 몸을 일치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자신을 속이면 삶 전체가 만화경 속의 풍경이 되어버린다.
마음과 몸을 일치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 중의 하나는 걷기다. 걸으면 마음이 몸을 떠나지 못한다.
한참 걷다보면 자연스레 명상이 이루어진다. 명상(冥想)은 자아가 희미해지며(冥) 떠오르는 생각(想)이다.
자아가 희미해지면, 마음과 몸이 오롯이 하나인 상태가 된다. 인간의 깊은 무의식에 있는 사랑과 지혜가 샘물처럼 솟아난다.
평소에 떠오르는 생각들은 강한 자아의 생각들이라, 지혜가 별로 없다. 온갖 탐욕에 젖어 있다.
철학자 헤겔은 인간의 정신은 “자의식에 의해 무한히 상승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자의식, 자신에 대한 의식은 자신을 바라볼 수 있기에 자신의 잘잘못을 고쳐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인간의 정신은 ‘자신의 성찰’에 의해 절대정신(신의 경지)에까지 오를 수 있다고 말한다.
자의식을 가진 인간은 자신을 성찰하면, 인간 이상의 경지에 오를 수 있고 성찰하지 않으면 인간 이하가 될 수 있다.
그러려면 마음이 항상 몸에서 떨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 마음이 몸에서 떨어져 허공을 떠돌게 되면, 자신의 몸이 보이지 않게 된다.
마음이 없는 몸, 좀비다. 우리 사회에 온갖 엽기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이유다. 그들은 본인이 무슨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지도 모른다.
평소에 우리는 알아차림 명상을 해야 한다. 몸이 가는 곳에 마음도 함께 가는지 항상 살펴보아야 한다.
마음과 함께 하는 몸은 언제나 사랑이 가득하고, 늘 지혜의 빛을 내뿜는다.
내가 다섯 해나 살다가 온
하와이 호놀룰루 시의 동물원,
철책과 철망 속에는
〔......〕
그 구경거리의 마지막 코스
“가장 사나운 짐승”이라는
팻말이 붙은 한 우리 속에는
대문짝만한 큰 거울이 놓여 있어
들여다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찔끔 놀라게 하는데
오늘날 우리도 때마다
거울에다 얼굴도 마음도 비춰 보면서
스스로가 사납고도 고약한 짐승이
되지나 않았는지 살펴볼 일이다.
- 구상, <가장 사나운 짐승> 부분
마음이 떠난 인간의 몸은 ‘가장 사나운 짐승’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마음만 불러들이면 인간의 몸은 한순간에 ‘가장 사랑스런 짐승’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