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
아름다움이 인류를 구원하리라. -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복권 당첨금 5억 때문에 연인 사이인 두 청춘 남녀가 서로 원수가 되었단다. 여자가 복권을 사서 남자에게 주었는데 남자가 긁어보니 5억짜리 복권이었단다.
여자는 자신이 복권을 샀기에 자신에게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고 남자는 여자가 복권을 자신에게 주었기에 자신에게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단다.
5억이면 얼마나 큰돈인가? 작은 돈에도 쉽게 망가지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기에 나는 그들의 행동을 의아해하지 않고 ‘이 시대의 당연한 행동’으로 받아들인다.
그렇게 헤어지고 나면 그들은 당첨금을 많이 갖게 되건 적게 갖게 되건 상관없이 모두 정신이 황폐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이런 생각도 문득 했겠지만, 돈 앞에 눈이 멀어 그야말로 보이는 게 없게 되었을 것이다.
우리 시대의 신(神)은 돈이다. 그는 최고의 유일신이다. 우리는 그 외에는 어떤 신도 숭배해선 안 된다. 배교하면 무서운 형벌을 받게 된다.
우리는 ‘돈신’의 나라에서 태어나 돈신의 나라에서 살아간다. 다들 모태 신앙이라 돈신에 대한 신앙이 뼛속까지 깊이 배어있다.
해결책은 무엇일까? 그들에게 이성적으로 얘기해선 통하지 않는다. 광신도에겐 이성이 없다. 오로지 믿음만이 있을 뿐이다.
그들이 당연하다고 믿는 것을 깨줘야 한다. 그들의 믿음을 산산 조각나게 하는 더 장엄한 것, 더 거룩한 것을 보여줘야 한다.
오늘 강의 시간에 ‘시 감상’을 했다. 시를 읽고 각자의 느낌을 나눴다. 차츰 분위기가 무르익어 기쁨이 강의실을 가득 채워갔지만 나의 시 강의에 대한 반발도 있었다.
나는 용혜원류의 ‘감상적인 시들’을 경계한다. 잠시 환각에 젖게 하는 박카스 한 병 같은 시들, 잠시 통증을 멎게 하는 진통제 같은 시들, 이런 시들이 좋은 시로 둔갑하여 돈신의 사제 역할을 하고 있다.
깊이 있는 시, 영혼을 흔드는 좋은 시들도 이 세상에는 넘쳐난다. 감상적인 시들을 좋은 시로 오해하는 수강생들에게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시는 각자 느끼기 나름 아니냐?’고 항변하는 제자들에게 나는 ‘그 느낌은 가짜’라고 냉정하게 말했다.
그 느낌을 오래 바라보라고 말했다. 그러면 진짜 자신의 느낌이 서서히 올라올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감성과 감상은 다르다고 말했다. 깊은 감수성을 잃어버린 단순한 느낌, 그런 감상에 따라가지 말라고 말했다.
인간은 영혼을 가진 존재라 영적 깊이에 닿지 않으면 진정한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 감상적인 시들은 표피적인 즐거움만 준다.
이런 즐거움에 빠지게 되면 돈신을 숭배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돈이 지배하는 세상이 싫다고 하면서도 얄팍한 감상적인 시들에 빠져 있지 않는가?
그들은 어쩔 수 없이 결국은 돈신을 경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 몸이 미(美)적인 몸으로 바뀌지 않으면 우리는 절대로 돈의 왕국에서 벗어 날 수 없다.
강의 시간에 따스하게 말해 주지 못한 제자들을 생각하며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이게 내 의무가 아닌가?
이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자그마한 소명인데, 내가 어찌 이것을 버릴 수 있는가? 그들에게 미안하면서도 나는 ‘좋은 시는 좋은 시고, 나쁜 시는 나쁜 시’라고 말 할 수밖에 없었다.
아, 어떻게 우리가 이 작은 장미를 기록할 수 있을 것인가?
갑자기 검붉은 색깔의 어린 장미가 가까이서 눈에 띄는데
아, 우리가 장미를 찾아온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가 왔을 때, 장미는 거기에 피어 있었다.
- 베르톨트 브레히트,《아, 어떻게 우리가 이 작은 장미를 기록할 수 있을 것인가?》부분
장미 한 송이 앞에서 미적 전율을 느끼는 시인은 바로 이 시대의 구원의 인간상이다.
시인의 경지에 오르면 돈신 앞에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있다. 돈보다도 길가에 흔하디흔하게 피어있는 장미 한 송이가 더 좋은데 어찌 그가 돈을 따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