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합일(神人合一)

by 고석근

신인합일(神人合一)

아름다움이 마침내 인류를 구원하리라.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알베르 카뮈는 ‘시지프 신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루하루 이어지는 광채 없는 삶에서는 시간이 우리를 떠메고 간다. 그러나 언젠가는 우리가 이 시간을 떠메고 가야 할 때가 오게 마련이다.”


하지만 하루하루 덧없는 삶을 살아가던 인간에게 ‘광채 있는 삶을 갈망하는 순간’이 올 수 있다.


그럴 때, 인간은 몸뚱이만 움직이는 좀비의 삶을 거부하게 된다. 그는 반항하는 인간이 된다.


반항하는 인간은 화석화된 기존의 규범, 진리를 거부하게 된다. 머리 위를 짓누르는 먹구름을 걷어치울 때,

깊은 내면에서 빛이 솟아올라온다.


그는 광휘에 휩싸인다. 괴테의 파우스트가 된다.


파우스트는 메피스토펠레스에 의해 지옥으로 끌려갈 걸 알면서도 외친다. “순간이여! 멈추어라, 너 참 아름답구나!”


그는 순간에서 영원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그 순간, 최고의 순간을 맛보았던 것이다. 죽어도 좋은 순간이었던 것이다.

인도의 경전 ‘우파니샤드’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해지는 광경의 아름다움이나 산의 아름다움 앞에서 문득 걸음을 멈추고, 아! 하고 감탄하는 사람은 벌써 신의 일에 참여하는 사람이다.’


인간은 물질인 몸으로 이루어진 존재 같지만, 실은 이 몸은 에너지다. 몸은 파동이 낮은 에너지여서 우리 눈에 물질로 보이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자아(자의식)’가 있어, 물질인 몸이 전부인 줄 안다. 물질인 몸의 이익을 위해 온 정성을 다한다.

하지만 물질인 몸은 사실 에너지여서, 생로병사를 겪는 몸은 허상이다. 실체가 아니다.


그래서 몸을 위해서 한평생 살아가는 현대인은 사는 게 허망하다. 견딜 수 없어 쾌락에 빠져든다.


점점 더 많은 물질을 탐하는 현대인들의 삶은 일상이 전쟁터다. 기후위기에 인류의 운명이 풍전등화다.


그런데도 아랑곳없이 지구 곳곳에 크고 작은 전쟁들이 일어나고 있다. 물질을 숭배하는 현대문명이 바뀌지 않는 한, 인류는 현대의 위기를 극복하기 힘들 것이다.


물질을 숭배하며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가능할까? 온갖 이론만 난무할 뿐, 인류의 위기는 점점 더 깊어질 것이다.


인류가 아름다움을 아는 인간으로 거듭나야 한다. 아름다움은 물질인 몸을 넘어서 자신이 사실은 에너지임을 자각하게 한다.


에너지는 경계가 없다. 우리는 몸으로는 각자의 존재이지만, 에너지 차원에서는 하나다.


우주 전체가 하나의 율동인 것이다. 인간은 이성적 존재가 아니다. 이성적으로는 우리가 서로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더라도, 행동이 바뀌지는 않는다.


인간은 근원적으로 충동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에 충동적으로 반응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는 온 몸의 율동을 느낄 것이다. 그는 무당처럼 우주의 영원한 춤판에 뛰어들게 될 것이다.


인간에게는 ‘진선미(眞善美)’를 아는 본성이 있다.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고 추한 것을 싫어한다. 이 아름다움을 완전히 깨우면, 진리와 선에 부합하는 행동을 하게 되어 있다.


물질을 숭배하는 이 세상의 하늘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우리는 광채 있는 삶을 체험해야 한다.


죽어도 좋은 미적 체험을 하게 되면, 우리는 한 순간에 화가 고갱처럼 모든 물질을 내던져버리게 될 것이다.


미루나무 밑에서 날개를 얻어 칠일을 산 늙은 매미가 말했다.

득음도 있었고 지음이 있었다.

꼬박 이레 동안 노래를 불렀으나

한 번도 나뭇잎들이 박수를 아낀 적은 없었다.


칠십을 산 노인이 중얼거렸다.

춤출 일 있으면 내일로 미뤄 두고,

노래할 일 있으면 모레로 미뤄 두고,

모든 좋은 일이 좋은 날 오면 하마고 미뤘더니 가쁜 숨만 남았구나.


그 즈음 어느 바닷가에선 천 년을 산 거북이가

느릿느릿 천 년째 걸어가고 있었다.

모두 한평생이다


- 반칠환, <한평생> 부분



우리는 항상 자신이 무겁다. 좋은 일을 미뤄서 그렇다. 좋은 일을 바로 받아들여야 한다.


온 몸이 항상 춤을 추며 노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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