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지미(有終之美)

by 고석근

유종지미(有終之美)


끝이 좋으면 다 좋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



유종지미, 일반적으로 ‘끝맺음을 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직장 생활할 때 가끔 이 말을 들었다. 나는 무의식중에 이 말에 대해 거부감을 가졌던 것 같다.


나는 최근에 셰익스피어의 희곡 제목인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문장을 읽고, 그 말의 의미를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유종지미를 글자 그대로 읽으면, 끝맺음의 아름다움인데, ‘끝맺음을 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로 읽고 쓰도 되는 걸까?


내가 무의식중에 ‘끝맺음을 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를 싫어했던 것은, 그 동안 해온 나의 모든 수고들이 한순간에 수단이 되어버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끝맺음만 잘하면 다 좋다고 보게 되면, 우리는 결과주의, 성과주의에 빠지게 된다. 자신도 모르게 사람과 세상을 수단으로 보게 된다.


결국에는 자신도 수단으로 보게 된다. 수단이 되어버린 인간, 영혼을 잃어버린 좀비가 된다.


황폐화된 영혼은 쾌락, 향락을 찾아 나서게 된다. 오랫동안 내려오는 사자성어에는 인류의 지혜가 집약되어 있다.


유종지미가 이렇게 쓰이게 된 것은, 물질의 가치를 중시하는 근대산업사회 이후가 아니었을까?


나는 이 말이 원래는 ‘끝이 좋으면 다 좋다’의 의미로 쓰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등산을 할 때 그렇지 않은가?

산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힘겹게 산 정상에 올랐을 때, 그 모든 고된 과정이 기쁨으로 화하지 않았던가?

인생사도 그렇지 않았던가? 심층심리학자 융은 ‘인생의 목적은 자기실현(自己實現)’이라고 했다.


자기(self)는 우리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진짜 나, 영혼이다. 인생은 이 영혼이 자신을 실현하는 긴 여로라는 것이다.


지나고 보면 그렇다. 온갖 실수들도 엄청난 방황들도 나의 영혼이 자신을 실현해가는 과정이었다.


길을 잃고 헤매던 모든 과정이 결국엔 산 정상에 오르는 길이었듯이. 세계 4대 시성 중 한 사람으로 불리는 셰익스피어는 인생의 진수를 꿰뚫어 본 것 같다.


인간은 죽을 때, 인생의 끝을 맺을 때, 누구나 영혼을 느낄 것이다. 영혼이 얼마큼 빛나는가?


영혼의 밝음에 의해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심판하게 될 것이다. 고대 중국의 성인 공자는 말했다.


“군자는 한평생 힘들게 살다가 죽을 때 비로소 편안하고, 소인은 한평생 즐겁게 살다가 죽을 때 힘들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 살아가면서 수많은 잘못도 저지르고 엄청난 방황을 하게 된다.


그런 과오와 방황이 좋으려면 끝이 좋아야 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가끔 경험한다. 어둠 속을 헤매다가 갑자기 빛을 보는 행운을.


빛을 따라 어둠 속을 나오게 되면 어둠 속의 시간들도 참 좋아지지 않았던가? 끝은 지나간 과거의 시간들도 바꾸게 된다.


진짜 시간은 오롯이 현재뿐인 것이다. 우리는 한평생 현재에 머문다. 현재가 과거를 재구성하고 미래도 구성하게 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끝인 현재를 체험해야 한다. 그 현재가 또 다른 끝의 과정, 과거가 되는 신비를 체험해야 한다.


‘유종지미’는 인생을 제대로 살아보려 노력하는 사람은 누구나 맛볼 수 있는 인생 최고의 아름다움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스팔트건 자갈이건 진창이건

생의 어느 고비에서건

온몸으로 부딪히고 상처 입으며 바퀴는

함께하는 모든 것을 자기 위로 올린다


(희생만큼 지독한 종교가


어디 있겠는가)

다 닳아 빵구나서 아무데나 버려지는

낯빛이 저리 검고 딱딱한 것은

퍼내지 못한 평생의 속울음

쌓이고 쌓였기 때문이다


모난 데 다 버리고

둥글다는 것은 얼마나

아픈가


- 이대흠, <바퀴는 슬프다> 부분



우리는 둥글둥글 살지 말아야 한다. ‘모난 데 다 버리고/ 둥글다는 것은 얼마나/ 아픈가’


끝이 좋으면 다 좋다!


‘모난 데’로 살아야 한다. 견뎌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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