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지자명(自知者明)
마음이 곧 이치다(心卽理). - 왕양명
노자는 말한다. “자지자명, 자신을 아는 것은 밝음이다.” 그럼 다른 사람을 아는 것은 무엇일까?
노자는 말한다. “지인자지(知人者智), 다른 사람을 아는 것은 지혜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말에 다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때 마음이 어떻게 보였을까? 아마 다들 캄캄했을 것이다. 깊은 우물을 들여다 보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이 깊은 어둠 속을 이성으로 알 수 있을까? 이성은 판단하는 마음인데, 자신의 마음속을 어떻게 판단할 수 있나?
동양 고전을 공부하며 명(明)이라는 단어를 많이 접했다. 서양의 이성이라는 단어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이성은 동양의 명과 유사할 수 있을지 모르나, 플라톤 이래의 이성은 수학적 이성이었다.
수학은 그냥 아는 게 아니라, 머리로 하나하나 분석하여 아는 것이다. 이것이 서양에서 지식, 지혜를 공부하는 방법이었다.
명은 척 보고 그냥 아는 것이다. 환하게 보이는 것이다. 양명학의 창시자 왕양명은 죽을 때 유언을 해달라는 제자들의 말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내 마음이 환하다.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 마음이 환한 사람은 그 빛이 세상을 비출 것이다.
세상도 그냥 보일 것이다. 직관력, 통찰력이다. 왕양명처럼 자신의 마음이 환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고 세상도 모르게 될 것이다.
우리의 마음속이 캄캄한 것은 우리가 자신의 마음을 갈고 닦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래 마음은 환한데, 너무나 오랫동안 돌보지 않아 아예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선불교의 6조 혜능은 말했다. “한 등불이 능히 천년의 어둠을 없애고 한 지혜가 능히 만년의 어리석음을 없앤다.”
어떻게 하면 우리도 지혜의 등불을 밝혀 만년의 어리석음을 없앨 수 있을까? 왕양명의 공부법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왕양명은 고향에서 아들이 위급하다는 연락을 받고 안절부절 못하는 제자에게 단호히 말했다. “지금은 공부할 때다!”
그렇다! 공부는 위급할 때 하는 것이다. 절체절명의 순간에는 마음의 빛이 일어난다. 그 빛을 알아차려야 한다.
평소에는 마음이 환하게 밝아지지 않는다. 소소한 일상사에는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절벽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한 사람은 이것저것 따질 겨를이 없다. 그냥 마음이 환하게 밝아진다.
세상만사를 자명(自明)하게 아는 것이다. 하지만 죽을 정도가 아니면 마음의 등불이 잘 켜지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사고를 당하면 안절부절 못하는 것이다. 그냥 알 수 있는 지혜도 나오지 않는 것이다.
왕양명은 ‘일상에서 마음 밝히는 공부법’을 창안했다. 그는 살아가면서 만나는 모든 일상사를 자신의 마음에 비추어 해결하려 했다.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는 ‘본성(本性)’이 있다. 우주를 다 밝힐 수 있는 지혜의 빛이 있는 것이다.
동양에서는 본성에 인의예지(仁義禮智)가 있다고 했고, 서양에서는 진선미(眞善美)가 있다고 했다.
왕양명은 이 마음의 본체를 ‘양지(良知)’라고 했다. 전지(全知)한 신에 버금가는 지혜의 마음인 것이다.
왕양명은 일상사의 해답을 이 양지에 비추어 찾아냈다. 나날이 그의 마음은 밝아졌다.
환한 마음으로 죽어간 그는 세상만사를 다 보았기에, 올 때 그냥 왔듯이 갈 때도 그냥 갈 수 있었을 것이다.
유리에 금이 가면 풍경에도 금이 가네
유리가 깨져 없어져도 풍경은 멀쩡하네
내용이 없어 투명한 유리야
다 담을 수 있어 아픈 마음아
- 함민복, <유리> 부분
‘다 담을 수 있어 아픈 마음아’
시인은 자신 안의 ‘내용이 없어 투명한 유리’를 오래 오래 들여다보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