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초극(自己超克)
모든 생명체는 지금까지 자신을 뛰어넘어 무엇인가를 창출해왔다. 그런데 그대들은 이 위대한 조류를 거슬러 썰물이기를 원하며, 인간을 뛰어넘기보다는 오히려 동물로 되돌아가기를 원하는가? - 프리드리히 니체
아침에 일어나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헉!’ 숨이 막혔다. ‘149명 사망!’ ‘어디에서? 어느 나라? 설마 우리나라에서?’
‘사고는 29일 오후 10시 22분경 이태원 해밀턴호텔 옆 골목 일대 행사장에서 발생했다. 수많은 인파가 몰리는 압사 사고로 심정지 환자가 대거 속출했다.’
‘사고 당시 상황에 대해 사람들은 “경사진 곳에서 갑자기 누군가 밀었다”며 “30~40분 동안 꽉 끼인 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자발적 핼로윈 파티중 비극… 경찰, CCTV 분석 중. 좁은 골목, 인파…유명인 등장하며 도미노처럼 쓰러져.’
‘구급차 앞 춤추며 떼창… 이태원 참사 현장 또 다른 비극... 영상을 보면 구급차 근처에서 시민들이 휴대폰을 들고 제자리에서 뛰며 떼창(떼를 지어 노래를 부름)을 하고 있다.’
‘여의도 불꽃축제. 다리위에서 볼 때도 비슷한 경험했다. 다리 위 좁은 보도위로 사람들이 자꾸 밀려와서 위험해보여 나가려는데... 그 놈의 불꽃 보겠다고... 자꾸 밀고서 들어옴.’
아, 어쩌다 이런 참사가 일어났을까? 아이들을 잃은 부모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간단 말인가?
30대 아이들을 둔 나는 부모의 마음부터 헤아리게 되었다. 아내는 작은 아이한테 전화를 했다.
전화 벨 소리에 잠을 깼다는 작은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자식이 이 세상에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부모는 얼마나 기쁜가!’
사람들은 분노한다. ‘국가는 도대체 뭐 한 거야? 국가의 존재가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것 아냐?’
소수의 목소리도 들린다. ‘국가가 어떻게 개인의 놀이 간 것까지 책임져? 각자 개인이 책임을 져야지.’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 진화를 했다. 원시부족사회는 ‘전체는 개인을 위하여 개인은 전체를 위하여’ 살아가는 사회였다.
원시인들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그 사회를 알려면, ‘좋은 가정’을 상상해 보면 된다.
좋은 가정에서는 가정이 철저하게 개인의 안위를 지켜준다. 살아도 함께 살고 죽어도 함께 죽는다.
좋은 가정 같은 세상. 인간에게 가장 맞는 사회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지상 낙원은 철기의 등장으로 산산조각이 난다.
지금으로부터 약 2500여 년 전이다. 지구 전체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온 인류가 중국의 춘추전국 시대 같은 세상에서 살았다.
석기, 청동기를 사용하며 어머니 품 같은 따스한 세상에서 살아가던 인류가 철기 무기와 철제 농기구를 사용하며 끝없는 탐욕에 젖어들었던 것이다.
이제 각자도생의 세상이 되었다. 성인(聖人)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개인의 ‘자기초극’을 가르쳤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자의식, 자신을 아는 의식이 있다. 이 자아가 문제다. 다른 동물들은 본능으로 살아가기에 천지자연의 이치와 충돌하지 않는다.
인간은 자아가 있어, 자신의 이익부터 챙기려 한다. 철기 무기로 수십만 명을 몰살시킨다.
이제 인간은 자신을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왔다. 우리의 본능에 없는 것을 우리는 해내야 한다.
철학과 종교의 시대가 열렸다. 작은 나(자아)를 넘어서 큰 나(자기)가 되어야,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제 인간은 어린애처럼 살아가면 안 된다. 자신의 삶을 책임져야 한다.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어 이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어 가야 한다.
그런데 이런 자기 초극의 인간이 얼마나 있는가? 대다수 사람들은 시류에 따라 살아간다.
왜 사람들이 핼로윈 축제를 즐기기 위해 이태원으로 달려갔을까? 인간에게는 자기초월의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단지 밥만 배불리 먹고는 살아갈 수 없는 게 인간이다. 어떤 거룩한 것, 위대한 것, 신적인 삶이 인간에게 있어야 한다.
인간이면서 동시에 신적인 삶, 원시시대에는 신화가 이런 역할을 했다. 그들은 의례를 하고 함께 춤을 추며 작은 나를 넘어 큰 나의 세계로 들어갔다.
철기문명이 등장하면서 이러한 신화들이 무너졌다. 철학과 종교가 신화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다.
하지만 철학과 종교의 깊은 깨달음으로 가는 사람들은 얼마나 되는가? 그래서 우리는 쉽게 신화시대로 돌아간다.
핼로윈 축제에서 사람들은 열광한다. 이 열광을 어떻게 안전하게 불타오르게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 과제를 풀어야 한다. 경찰의 안전에 대한 철저한 대비는 당연하지만, 우리는 동시에 인간의 ‘신성(神性)’에 대한 갈망을 깊이 고민해 봐야 한다.
인간에게는 죽어도 좋은 열광이 있는 것이다. 원시인들의 열광이 사라진 자리에 깊은 우울과 권태가 남고, 견딜 수 없어 사람들은 끝없이 쾌락을 찾아 나선다.
‘이태원 참사’는 우리에게 묻는다. ‘인간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경고한다. ‘지금처럼 물신(物神)만 숭배하면 대참사가 끊임없이 일어날 거야!’
풀숲에 어둠이 축축해지면
밤마다 죽어야 할 것들이 길로 몰려든다
몰려들어 아득한 비명의 터널을 만든다
〔......〕
길과 한 몸을 이루는 사랑이
죽음이라는 것을 모르는 저들에겐
달려오는 불빛도 황홀한 축제이다
- 박남희, <로드킬> 부분
아직 동물들은 인간이 만든 길이 위험하다는 것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아득한 비명의 터널’ 속으로 들어간다.
수십만 년이 흐르면 ‘로드킬’을 피하는 DNA가 그들에게 생겨날까?
시인은 그들의 죽음을 ‘황홀한 축제’라고 한다. 인간 세계의 죽음의 황홀한 축제들도 로드킬의 문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