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타불이(自他不二)

by 고석근

자타불이(自他不二)


사람답게 사는 것은 타자에 눈뜨고 거듭 깨어나는 삶이다. - 엠마누엘 레비나스



러시아의 대문호 표도르 토스토예프스키의 장편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는 양파 한 뿌리에 대한 짧은 우화가 나온다.


옛날 옛날에 성질이 고약한 한 노파가 있었다. 그녀는 한평생 단 한 번도 선행을 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가 죽자마자 악마들은 지옥의 불바다 속에 던져 버렸다.


노파의 수호천사는 지옥에서 벌을 받고 있는 그녀가 너무나 불쌍해서 하느님께 간청을 하였다.


하느님이 말했다 “그 노파가 살아생전에 착한 일을 단 한 가지라도 했다면 고려해 보겠다.”


수호천사는 노파가 생전에 선행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을까 내내 생각하다가 마침내 그녀가 했던 단 하나의 선행을 찾아냈다.


그녀는 언젠가 지나가는 거지 여인에게 텃밭에서 뽑은 양파 한 뿌리를 준 적이 있었다.


하느님은 그 양파 한 뿌리를 노파에게 던져줘서 노파가 양파 뿌리를 붙잡고 지옥을 빠져나오면 천국으로 올 수 있다고 하였다.

수호천사가 양파 한 뿌리를 노파에게 내밀자 그녀는 양파 뿌리를 붙잡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 모습을 본 다른 죄인들이 그녀에게 매달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죄인들을 발로 차며 매몰차게 말했다. “이건 내 양파야! 너희들의 것이 아니라고!”


결국 양파 뿌리는 툭 끊어져 버렸다. 그녀도 다시 지옥의 불바다로 떨어지고 말았다. 수호천사는 눈물을 흘리면서 그 자리를 떠나갔다.

하느님의 마지막 시험은 무엇이었을까? ‘공감’이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함께 느끼는 것.


인간은 동물에서 진화했다. 그때 ‘거울 뉴런’이 생겨났다. 이 뇌세포 덕분에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똑같이 따라하거나 흉내를 낼 수 있다.


이 공감의 능력으로 인간은 찬란한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다른 동물에게는 없는 ‘자아’가 있다.


자아는 ‘나’라는 의식이다. 이 자아는 자신을 중심에 놓고 세상을 본다. 그래서 인간은 이기주의자가 되기 쉽다.


따라서 인간은 공감의 능력을 기르지 않으면, 자아가 무한히 팽창하여 오로지 자신만 챙기는 악마가 될 수 있다.


그 노파가 한평생 이기주의자로 살아온 이유이다. 하지만 이 노파의 깊은 마음에는 공감의 마음이 있기에, 거지에게 양파 한 뿌리를 주었던 것이다.


하느님은 그 노파에게 공감의 마음을 시험해 본 것이다. 하지만 그 노파는 지옥의 불바다에서 양파 한 뿌리가 내려오는 것을 보자 자아의 탐욕에 빠져 버렸다.


코로나 19, 기후위기가 온 인류를 지옥의 불바다에 빠뜨릴 수 있다. 우리는 누구나 ‘거지에게 양파 한 뿌리를 준 노파의 선행’은 했을 것이다.


이 선행의 마음을 항상 잊지 않고 소중히 간직하고 있으면, 인류는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노파처럼 그 마음을 잊게 되면, 우리는 구원을 받을 기회를 잃어버릴 것이다.


우리는 자아의 이익을 위해 마구 지구를 파헤쳤다. 하지만 그 결과 우리에게 이익이 오지 않고 재앙이 왔다.


이 세상의 실상은 자타불이, 나와 다른 존재는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감의 마음을 잃게 되면, 이러한 세상의 실상을 보지 못하게 된다.



내 안의 깊은 길을 흘러

그들의 마을로 간다

그들의 공간 속에서

그들은 낯선 기둥처럼 우뚝 선다

딛고 선 땅 위엔

들풀들이 가득하고

바람은 풀잎을 헤치고 나를 향해 불어온다

그들은 나를 느낀다


- 연왕모, <공감대> 부분



시인은 ‘인간’을 온전히 보존하고 있다. ‘바람은 풀잎을 헤치고 나를 향해 불어온다/ 그들은 나를 느낀다’


인간은 공감의 능력을 잃어버리면 괴물이 된다. 동물은 공감의 능력이 없어도 본능적으로 탐욕을 억제한다.

그런데 공감의 능력을 잃어버린 인간의 자아는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된다. 그 망아지 손에 총과 칼, 핵폭탄이 주어지게 되면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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