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은지심(惻隱之心)
삶을 향유할 수 있는 최고의 비결을 너희에게 알려주겠다. 위험하게 살아라. - 프리드리히 니체
러시아 작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장편소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는 다음과 같은 장면이 나온다.
장남 드미트리의 약혼녀 카테리나 이바노브나는 자유분방한 여성 그루셴카가 자신의 약혼자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그녀를 ‘착한 여자’로 만들려고 한다.
“이 분은 선한 천사처럼 이리로 날아와 평안과 기쁨을 가져다주었답니다... .” 그리고는 그루셴카의 웃음 띤 입술에 몇 번이나 환희에 찬 입맞춤을 퍼부었다.
하지만 그루셴카는 냉담하게 일어선다. “훌륭한 아가씨, 당신 앞에 있는 나란 여자는 얼마나 추잡하고 제멋대로인지 아셔야 해요. 전하고 싶은 대로 행동을 할 거예요.”
그러자 카테리나 이바노브나는 소리친다. “뻔뻔스러운 년!” “더러운 계집년, 썩 꺼져 버려!”
우리는 어릴 적부터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한 꾸준한 훈육을 받는다. 사탕과 채찍을 번갈아 쓰는 부모, 학교, 사회에 의해.
종교에서는 착한 사람은 천국, 극락에 간다며 우리 귀에 속삭인다. 드디어 우리는 착한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순종하게 된다.
현대 철학의 아버지 프리드리히 니체는 말한다. “착한 사람이 되지 말고 약한 자가 되어라!”
니체는 착한 사람의 본질은 약한 자라는 것이다. 약한 자가 자신이 약한 자임을 숨기기 위해 선한 자의 가면을 쓴다는 것이다.
약한 자들은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갈 줄 모른다. 항상 강자의 지배를 받기를 원한다.
그들이 분노를 할 때는, 강자들이 자신들을 사랑해주지 않을 때다. 그들은 부모에게 투정부리는 아이다.
우리는 이런 아이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어 자신의 길을 꿋꿋이 걸어가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
나는 오랫동안 착한 아이로 살아왔다. 가난한 소작농의 장남에게 주어진 길이었다. 그 길을 벗어나는 데 수십 년이 걸렸다.
30대 중반에 자유인이 되어, 세상을 떠돌며 나 자신이 얼마나 무기력하게 길들여진 한 마리 개라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늑대의 본능이 어느 날 술집에서 깨어났다. 문학을 공부하는 도반들과 술집에 갔다가 옆 테이블의 술꾼들과 싸움이 붙었다.
갑자기 내 안에서 불꽃처럼 야성이 피어올라왔다. 나는 주먹을 내뻗으며 내 안에서 생명이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아, 얼마나 오랫동안 나는 싸움을 피해왔던가! 철이 들면서 부터는 싸움을 하지 않았다. “싸우면 안 돼! 가난한 부모님께 치료비를 물게 할 수는 없어!”
나는 눈에 거슬리는 놈들을 다 악한 자로 만들었다. ‘나쁜 놈들, 저런 놈들 때문에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야!’
나는 언젠가부터 내가 시들시들 시들어간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나의 목을 매고 있던 목사리를 풀었다.
들판을 마구 달렸다. 눈물이 마구 흘러내렸다. 신 세월동안 약한 자로 살아온 나에 대한 애도였다.
나는 인문학을 공부하며 인간은 누구나 강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에게 지고 살아가면, 반드시 남에게 피해를 주게 되어 있다.
인간 외의 모든 동식물들은 강자로 살아간다. 언뜻 보면 강자들이 약자들을 먹고 사는 듯이 보이지만 큰 눈으로 보면, 그들은 다 강자다.
사자가 얼룩말을 먹는 강자 같지만, 그렇지 않다. 만일 얼룩말들이 일치단결하여 사자에게 대항한다면 어떻게 될까?
모든 초식동물들이 대동단결하여 육식동물에게 대항한다면? 초식동물들의 개체수가 엄청나게 불어나 초원이 사라지고 종국에는 초식동물들도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이다.
생명체의 존재 원리는 상생, 상극이다. 인간만이 강자와 약자로 나눠져 병적인 사회를 이루고 있다.
인간사회가 아름다워지려면 우리 모두 강자가 되어야 한다. 자신만의 잠재력을 계발하면, 누구나 강자가 된다.
나는 긴 방황을 하고서 인문학 강의와 글쓰기에서 나의 길을 찾았다. 묵묵히 나의 길을 가려한다.
이제 비로소 내 안의 측은지심, 남에 대한 사랑을 느낀다. 제대로 된 인간으로 살아 갈 수 있을 것 같다.
어머니를 뜨거운 물에 넣어
팔팔 끓였습니다
비늘이 떨어져 나간 어머니가
너덜거립니다
〔......〕
오래 오래
팔팔 끓였습니다
지느러미가 떨어져나간 어머니가
흐느적거립니다
허기질 때마다 국물을 마십니다
언뜻 언뜻 내 몸에서
어머니 냄새가 납니다
- 신미균, <국물용 멸치> 부분
우리가 이만큼이라도 살아갈 수 있는 건, 긴 세월동안 ‘국물용 멸치’가 되어 온 어머니 덕분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 몸에서 ‘어머니 냄새’를 맡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