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신세계

by 고석근

멋진 신세계



영국의 소설가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에는 총통과 야만인 존의 다음과 같은 대화가 나온다.


“하지만 저는 불편한 것을 좋아합니다.” “우리는 그렇지 않아.” 총통이 말했다.


“우리는 여건을 안락하게 만들기를 좋아하네.” “하지만 저는 안락을 원치 않습니다. 저는 신을 원합니다. 시와 진정한 위험과 자유와 선을 원합니다. 저는 죄를 원합니다.”


“그러니까 자네는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고 있군 그래.” “그렇게 말씀하셔도 좋습니다.” 야만인은 반항적으로 말했다.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합니다.”


야만인 존은 총통이 다스리는 ‘멋진 신세계’에서 끝내 자살로 자신의 생을 마감한다.


왜 야만인은 문명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걸까? 이미 우리는 사실 ‘멋진 신세계’에 살고 있다.


인간의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마음대로 통제하려 하고 있고, 그 중 많은 부분에서 이미 성공을 거두고 있다.

우리 주변에 소마, 온갖 불안과 스트레스, 슬픔, 근심 걱정을 잊게 해주는 만능 약은 얼마나 않은가?


고통을 줄여주는 온갖 약물, 음료수, 술, 마약... 대중매체의 온갖 달콤한 볼거리들... 힐링을 위한 온갖 시설들... 달짝지근한 온갖 읽을거리들... .


그런데 왜 하루에 자살하는 ‘야만인들’이 이리도 많은가? 왜 그들은 문명의 달콤함을 거부하는가?


인간에게는 영혼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가 말한, ‘천하를 다 얻는다 해도 영혼을 잃어버리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의 영혼 말이다.


인간의 육체는 우리 눈에 물질로 보이지만 사실 물질이 아니다. 육체가 물질 같으면 멋진 신세계가 주는 온갖 달콤함이 인간에게 전부가 될 것이다.


이 육체가 늙지도 않고, 자신의 직업에 불만도 없고, 병이 들지도 않고, 죽음의 공포도 없고, 조금만 힘들어도 소마 몇 알을 먹으면 되고, 섹스도 마음껏 즐기고... .


도대체 무엇이 불만이란 말인가? 만족이 인간의 최고의 가치가 아닌가? 그런데 왜 자살한단 말인가?


인간의 육체는 사실, 에너지장이기 때문이다. 온 우주가 하나인 에너지장이기 때문이다.


파동이 낮은 에너지는 우리 눈에 물질로 보인다. 우리 눈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육체는 에너지다.

그러니 어떻게 인간이 육체의 욕구만으로 만족이 되겠는가? 육체의 욕구는 육체의 보존을 위해 중요하지만, 우리 안에는 육체의 욕구를 훨씬 넘어서는 강력한 영적(에너지)인 욕구가 있는 것이다.


‘... 안락을 원치 않습니다. 저는 신을 원합니다. 시와 진정한 위험과 자유와 선을 원합니다... 죄를 원합니다...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합니다.’


인간은 이 욕구를 위해 육체를 단념한다. 역사적으로 무수한 위대한 인간들은 다 이 욕구를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던져버린 사람들이다.


멋진 신세계는 지금 건설 중이다. 온갖 언론 매체들이 우리의 육체가 우리의 전부라고 우리의 귀에 늘 속삭인다.


기업들의 광고는 온갖 현란한 물질들로 우리를 현혹한다. 지금 이 시대는 물질을 숭상하는 총통들이 지배하고 있다.


그들은 남을 지배하는 사디스트들이다. 물질을 숭배하다 보면, 우리의 영혼이 허약해진다.


허약한 영혼은 남을 지배하는 쾌감, 지배당하는 쾌감에 길들여진다. 이 세상은 사디스트들과 마조히스트들이 판친다.


길들여지지 않은 야만인들은 살기 위해 죽어야 한다. 문명인들이 자신 안의 야만성을 깨우지 않으면, 우리 모두 피리 소리에 취해 강으로 뛰어드는 쥐가 되고 말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팜므 파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