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나

by 고석근

생각하는 나



근대철학의 아버지 르네 데카르트는 말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당연한 말인 듯하다.


하지만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은 이 말을 비꼬았다. “나는 생각하는 곳에 없다. 나는 생각하지 않는 곳에 있다.”


누구 말이 맞을까? 머리로 따져보면, 데카르트 말이 맞는 듯하다. 하지만 머리(이성)가 진실을 알 수 있을까?

우리의 머리는 어떤 생각의 틀을 갖고 있다. 그런데 그 생각의 틀은 사실 언어의 틀이다.


언어가 우리의 생각을 구성한다. 생각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언어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책을 읽거나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기억이 되고 어떤 상황에서 마치 자신의 생각인 듯이 자연스레 입을 통해 나온다.


그래서 인류의 스승 소크라테스는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일갈했다. 우리는 항상 자신의 생각을 곰곰이 되씹어 보아야 한다.


온 몸이 “맞아!”하고 소리칠 때까지 되새김질을 해야 한다. 소크라테스는 한평생 이 내면의 천둥 같은 소리를 들으며 살았다고 한다.


현대철학의 아버지 프리드리히 니체는 말했다. “나는 피로 쓴 글씨만 믿는다.” 온 몸으로 쓴 것만이 진정한 자신의 생각이라는 것이다.


데카르트가 말한 ‘생각하는 나’는 중세가 무너지고 근대가 들어설 때의 철학이다. 신이 죽은 자리에 ‘생각하는 인간’이 들어선 것이다.


생각하는 인간은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으로 승격시켜 만물을 지배하려했다. 생각은 삼라만상을 분석하고 계발하는 유용한 도구가 되어 눈부신 물질문명의 발전을 이룩하였다.


하지만 인간은 거대한 물질문명의 그림자에 가려져 버렸다. 왜소해진 인간들은 스스로를 되돌아보았다.


‘도대체 우리가 무엇을 한 것인가?’ 그들은 꼭두각시처럼 움직였던 것이다. 인간에게 어떤 언어를 계속 주입하면, 인간은 그 언어대로 움직이게 된다.


근대의 모든 언어들은 물질의 신, 물신(物神)을 찬양하는 주술들이었다. 이제 인간은 제정신으로 돌아와야 한다.


자신의 생각을 되찾아야 한다. 원시인들은 언어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함부로 말을 하지 않았다.


소크라테스는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그 생각을 반추하기 위해 오랫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고 한다.

우리는 범람하는 언어들의 홍수 속에서 자신의 언어, 자신의 생각들을 가다듬어 가야 한다.


우리의 머리, 의식에 있는 생각은 남의 언어, 남의 생각들이다. 그 언어를 되새김질해야 한다.


온 몸이 소화하여 자신의 생각으로 재탄생할 때까지. 그리하여 자신의 언어만을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인공지능시대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언어, 생각을 다 기억하고 말하게 되었다. 언어, 지식을 기억하여 앵무새처럼 말하는 모든 전문가들은 실직하게 된다.


인공지능이 말하지 못하는 것,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우리는 말해야 하고 생각해야 한다.


소크라테스는 진리를 얻는 방법을 산파술이라고 했다. 우리 안에 이미 진리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리하여 온 몸에서 솟아나는 언어만을 말하며 자신의 길을 가야 한다.


풀 한 포기처럼, 멀리서 홀로 빛나는 별처럼, 꿋꿋이 자신의 세계를 열어가는 한 그루 나무처럼,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한 마리 개미처럼... .

keyword
작가의 이전글멋진 신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