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공동체

by 고석근

기쁨의 공동체



TV 드라마를 보다보면, ‘슬픔의 공동체’를 발견하게 된다. 서로를 열렬히 사랑하던 연인이 어떤 사연으로 헤어진다.


그들의 인연을 다시 잇는 방법은? 사건, 사고다. 연인 중 한 명이 교통사고가 크게 나거나 중병에 걸리는 것이다.


그들은 깊디깊은 슬픔의 강물 속으로 빠져든다. 그들은 슬픔으로 흠뻑 젖은 몸이 되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아테네에는 비극이 엄청나게 발전하였다고 한다. 주변의 강대국들의 침략을 받으며, 그들은 ‘슬픔의 공동체’를 만들어 버텨냈다고 한다.


수백 개의 극장에서 함께 흘리는 눈물이 강을 이루고 그 강물 속에서 그들은 하나가 되어 갔던 것이다.


그런데 만일 아테네가 다른 강대국들을 정복하여 거대한 강대국이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비극은 종말을 고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면 희극이 발전하였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더 이상 하나가 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권력은 자식하고도 나누지 못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달도 차면 기울이지고 활짝 피어난 꽃은 떨어지게 되어있다. 그들은 서로 뒤엉켜 싸우며 패망의 길을 걸어갔을 것이다.


슬픔을 나누기는 쉬워도 기쁨을 나누기는 힘들다.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와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는 다르다.


가난한 사람들은 서로 도우며 살아간다. 하지만 부유한 사람들은 자신들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서 각자 살아간다.


연인들도 어느 누가 아주 잘 되면 더 이상 사랑하기가 힘들어질 것이다. 그래서 TV 드라마에서는 기쁨의 공동체는 등장하지 않는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말했다. “기쁨을 나누는 관계가 친구를 만든다.” 그런 친구를 가진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오래 전에 언어학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지은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우다’를 읽었다.


라다크는 인도 북부에 자리 잡은 오지다. 그 척박한 땅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수시로 ‘슬픔의 공동체’도 만들어 내고, ‘기쁨의 공동체’도 만들어냈다. 슬픔의 공동체밖에 만들어내지 못하는 우리 문명사회와는 전혀 달랐다.


그래서 책 제목이 ‘오래된 미래’다. 인류는 사실 수 만년 동안 그렇게 살았다. 슬픔의 공동체만 만들어 간신히 살아가는 문명사회는 수백 년, 수천 년밖에 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왜 찬란한 문명사회는 이리도 지리멸렬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문명사회에서는 사람들이 갈가리 찢어져 살아가기 때문이다.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 남자와 여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선진국과 후진국...... .

평소에 서로를 질시하며 살아가는 데, 기쁨이 왔을 때 함께 나눌 수 있을까? 함께 슬픔이 와야 비로소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동물에서 진화하면서 서로를 공감하는 마음이 생겨났다. 이 마음 때문에 인간은 찬란한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찬란한 문명 속에서 인간은 이 공감하는 마음을 잃어가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오늘도 TV 뉴스에서는 수시로 온갖 사건, 사고들을 보여준다. 슬픔의 공동체를 만들어 이 세상을 버텨내려는 안간힘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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