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욕
나를 키운 건 8할이 명예욕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 나는 이다지도 명예욕에 목말라 할까?
타고난 꿈꾸는 기질과 가난했던 가정환경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어릴 적 몇 가구 밖에 안 되는 작은 마을에 삼총사가 있었다.
고모님 댁의 한 살 많은 사촌형과 주인집 아들 그리고 나, 어느 날 별이 눈부시게 빛나던 밤 논두렁에 앉아서 서로의 꿈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사촌형은 어른이 되면 1억을 벌겠다고 했다. 나는 유명해지고 싶다고 했다. 주인집 아들은 평범하게 살겠다고 했다.
그런데 반세기가 지나 만나보니, 우리는 그때 꿈꾼 대로 살아가고 있었다. 사촌형은 상당한 부자가 되어 있었고, 주인집 아들은 중학교 교장이 되어 있었다.
나는 유명하지는 않아도 인문학 강의를 하고 책을 몇 권 냈다. 분석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이 말하는 인생의 목적, ‘자기실현(自己實現)’을 향해 우리는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목표로 하는 것이 돈, 권력, 명예라고 한다. 이 중에서 현대인들이 가장 중시하는 것은 돈일 것이다.
작년에 대통령이 집 두 채 가진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에게 한 채를 처분하라고 하자, 다들 사표를 냈다.
헉! 그 높은 지위보다 집 한 채가 좋다니!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들의 처사는 너무나 당연한 것 같다.
돈 없는 고위공직자를 누가 알아주랴? 우리나라에서는 돈이 있으면 나머지는 쉽게 가질 수 있다.
소위 선진국에서는 한 사람이 동시에 세 가지를 다 갖지 못하게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세 가지가 분리되어 있기만 해도 그 사회에는 정의와 공정이 많아 살아있게 될 것이다.
원시부족사회에서는 부족장에게는 명예만 있었다. 돈이 있으면 나눠줘야 하고, 권력을 부리게 되면 추방되거나 죽음을 당해야 했다.
명예만 있는 최고 지도자, 얼마나 멋진 일인가! 부족 구성원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면 오로지 자신의 능력만으로 서로 타협하게 해야 했다.
길을 가다 어느 누가 배가 고프다고 하면 숲으로 가서 먹을 것을 구해 와야 했다. 꿈같은 세상이 아닌가?
만일 우리나라에서 경찰, 검사, 판사에게 시민들의 분쟁을 권력을 행사하지 않고 해결하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
몸이 아플 때 화들짝 느낀다. 내가 설령 유명해진다 한들 명예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돈이 있어야 좋은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을 것이 아닌가? 권력이 있어도 도움이 될 테고. 명예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원시 사회나 고대, 중세 사회에서는 명예만으로 잘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세상이 알아주니까.
몸이 아프면 세상이 그를 도와주었을 것이다. 지금도 그럴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우리사회에서는 유명해지면 좋을 것 같다. 남들의 선망어린 눈빛을 받을 테니까. 돈도 자연스레 따라 올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강의를 가며, 고급 승용차들 사이를 빠져나가며 생각한다. 지금은 유명하지 않으니까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데, 내가 만일 유명해지면 어떻게 될까?
돈은 없는 유명인이라면? 지금처럼 소박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오로지 명예만으로 한 세상을 당당하게 살아가던 옛 사람들이 그립다. 그런 사람들을 인정해 주던 세상이 간절히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