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예찬
인디언들은 화가 나면 화가 풀릴 때까지 걸었다고 한다. 그러다 화가 풀리면 되돌아 돌아온다고 한다.
대평원을 혼자서 고독하게 걸어가는 인디언. 그를 삼라만상이 지켜 볼 것이다. 인디언은 그들의 따스한 눈길을 받으며 걷는다.
바람이 불어와 그를 보듬어 줄 것이다. 따스한 햇살이 내려와 그를 따스하게 안아줄 것이다.
온갖 새들이 그에게 위로의 말을 건넬 것이다. 그의 어깨에 앉은 파리는 그에게 ‘이제 그만 화를 풀라’는 신령들의 말을 전할 것이다.
차츰 그의 마음은 고요히 가라앉을 것이다. 투명해진 그의 마음. 그는 해맑게 웃으며 오던 길로 되돌아 갈 것이다.
화가 나는 것은 스스로의 마음이 일으킨 거친 파도다. 물론 밖에서 오는 자극들이 마음의 파도를 일어나게 했지만, 마음이 근본 원인이다.
같은 자극을 받아도 어떤 사람은 화를 내고 어떤 사람은 화를 내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의 상태에 따라 밖에서 주어지는 자극은 다양한 반응을 일어나게 한다. 마음이 모든 것을 지어낸다.
우리의 모든 경험은 마음에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은 밖에서 주어지는 자극에 반응하게 된다.
그런데 그 흔적은 물에 비친 그림자 같은 것이다. 아이들은 그 그림자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신나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는 과거는 없다. 오로지 현재만 찬란하게 빛난다.
그러다 어른이 되어가며 현재가 즐겁지 않게 된다. 자꾸만 과거의 추억들로 도피하게 된다.
과거로 돌아가면 즐거워진다. 다 빛나는 시간들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허상이다.
과거의 어느 순간에 몰입하다보니 즐거워진 것이다. ‘옛날에 옛날에... .’를 중얼거리는 어른들의 얼굴엔 전혀 즐거움이 없다.
시간은 오로지 현재만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과거는 기억에만 존재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걸으면 과거의 무의식에 저장되어 있던 기억들이 밖에서 주어지는 자극에 따라 의식 위로 떠오르게 된다.
앉아 있을 때 과거의 기억들이 떠오르게 되면, 마음이 그 기억들 속으로 빠져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걸어가게 되면 과거의 기억들 속으로 빠져 들어가지 않는다. 위험하기 때문이다.
걸어가면 오감이 깨어난다. 정신이 깨어있게 된다. 과거의 기억들은 오감과 함께 현재의 시간 속으로 들어오게 된다.
현재가 된 과거,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게 된다. 더 이상 과거는 우리의 마음을 붙잡지 못하게 된다.
오롯이 현재에 현현히 빛나는 시간이 있을 뿐이다. 현재에 머물게 된다. 카르페 디임이다.
어떤 과거의 아픔도 바람결 따라 흩어져 버린다. 애초부터 아픔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것은 ‘공간’이다. 하지만 이 공간은 사실 시간에 따라 변한다.
우리는 시간과 함께 존재하는 공간, 시공간 속에서 살아간다. 이 시공간을 느끼려면 오감이 열려야 한다.
우리는 공간 속에서만 살아간다는 착각 때문에 과거의 기억에 연연하는 것이다. 오감이 다 열릴 때 온전히 마음이 깨어난다.
온전한 마음에는 과거는 없다. 하지만 조금만 마음이 흐트러지면 과거의 기억들이 우리 마음에 나타나 들끓게 된다.
우리는 자주 걸어야 한다. 오감이 다 깨어난 마음으로 이 세상의 속살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나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