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론
나는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읽으며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오래 전에 현관문이 잘 열리지 않은 적이 있었다. ‘왜 그렇지?’ 요리조리 현관문을 꼼꼼하게 살펴봐도 아무런 문제점도 발견하지 못했다.
할 수 없이 열쇠 출장 수리점에 전화를 했다 잠시 후 열쇠 수리기사가 왔다. 그녀도 현관문을 살펴보며 고개만 갸우뚱거렸다.
한참 후, 그녀는 현관문 아랫부분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조그만 못이었다. 그게 현관문을 여닫을 때 걸렸던 것이다.
‘헉, 저 못이 원인이었다니!’ ‘수리비를 어떻게 해야 하나? 얼마나 줘야하지?’ 조심스레 말을 꺼냈는데, 그녀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고친 게 없는데 뭘 받아요?”
“그래도 출장비라도 드려야죠.” 하고 내가 말했지만, 그녀는 한사코 손을 내저으며 돌아갔다.
나는 그녀의 등 뒤에 대고 “다음에 부탁드릴게요.”하고 소리쳤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기억도 가물가물해졌다.
얼마 전에 현관문 번호 자물쇠를 교체했다. 하지만 인터넷을 뒤져 가까운 자물쇠 수리점에 연락을 했다.
그녀의 웃는 얼굴이 떠오른다. 맑게 살아온 얼굴이다. 그런데 나는 그녀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사람은 은혜를 이다지도 쉽게 잊는다. 하지만 재산 피해를 준 원수는 절대 잊지 않는다고 한다.
아마 그녀도 잊고 있을 것이다. 살아오면서 수없이 속아왔을 테니까, 약속을 저버리는 것에 대해 둔감해졌을지 모른다.
우리는 서로를 믿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 마키아벨리가 살던 시대도 우리와 같이 불안한 시대였다.
잦은 외침으로 항상 정국이 불안했다. 불안한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부터 챙기게 되어 있다.
마키아벨리는 분열된 조국이 하나의 강력한 국가로 통일되기를 바랐다. 그 열망이 군주론으로 열매를 맺었다.
그는 자신의 혼이 담긴 군주론을 그 당시 피렌체공화국의 실질적인 지배자인 메디치가의 로렌초 데 메디치공에게 헌정했다.
그는 난세의 군주는 모름지기 ‘사자의 용맹함과 여우의 간교함’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군주론이 마키아벨리의 뜨거운 열망과는 달리 각자도생(各自圖生) 시대의 자기계발서 교과서가 되고 있다.
하지만 군주가 아닌 각 개인들이 사자의 용맹함과 여우의 간교함을 처세술로 무장하여 살아간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
만인이 만인의 적이 되는 생지옥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 보통사람들은 난세의 군주가 아니다.
우리는 이 난세를 돌파할 수 있는 강하면서 부드러운 지도자를 선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가장 시급한 것은 ‘도덕과 정치의 분리’일 것이다.
과거 봉건시대에는 성인(聖人)이 정치하는 도덕정치(道德政治)가 이상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도덕정치체제로는 현대사회의 복잡한 여러 난관을 돌파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선거 때마다 수없이 경험한다. 도덕의 이름으로 단죄를 받은 유능한 정치인들이 아침 이슬처럼 사라지는 것을.
그들이 사라진 자리에는 정치적 무관심이 똬리를 튼다. ‘그놈이 그놈이야!’ 결국에는 돈과 권력을 가진 무능한 정치인들이 국민의 대표가 된다.
우리는 도덕의 우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 하지 말라... ’는 도덕률들은 어떤 사회적 맥락 속에서 생겨났다.
우리는 사회적 맥락 속에서 그 도덕률들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마키아벨리처럼 우리의 현실을 냉엄하게 볼 수 있어야 한다. ‘멋진 군주’의 출현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