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가 상처에게
베른하르트 슬링크의 소설 ‘책 읽어주는 남자’를 읽으며 내내 울먹였다. 나의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았다.
15세 소년 미하엘과 36세 여인 한나의 순수한 사랑, 현실이라는 벽은 그들을 갈라놓게 된다. 사랑은 이렇게 허약하다.
한나는 히틀러 치하의 나치 정권에서 친위대로 부역을 했다. 글자를 모르는 그 녀는 그 상황에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전범 재판에서 그녀는 판사에게 묻는다. “판사님 같으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하셨겠어요?”
그렇다. 그 상황에서 그녀처럼 행동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지만 종전 후 그녀는 깊은 내면의 상처를 안고 살아야 했다.
미하엘과 사랑을 나누며 그녀는 항상 불안하다. 미하엘을 만날 때마다 책을 읽어달라고 한다.
그녀는 무심코 느꼈을까? ‘아, 책을 읽을 수 있었다면 내게 다른 삶도 가능했을 게 아닌가?’
책에는 인류의 모든 지혜가 담겨 있다. 책을 읽지 않아도 우리 안에는 인류의 지혜가 집단무의식에 고스란히 담겨 있지만, 책이나 어느 누군가가 꺼내 주어야 한다.
그녀에게는 그러한 행운이 없었다. 우리의 일제강점기, 그녀 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았을까?
물론 기회가 왔어도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가지 못한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기회가 없으면 아예 새로운 삶을 꿈꾸지 못한다. 내면 깊은 곳의 양심은 아파하겠지만, 그것이 불꽃을 피우지는 못한다.
캄캄한 세상에서 어떻게 길을 찾아갈 수 있겠는가? 주어진 습관대로 살아갈 뿐이다.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한 소년이 어느 날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그녀가 그 소년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 소년은 천사의 역할을 다 해낼 수 있을까? 우리의 현실은 살아내야 하는 처절한 삶이다.
돈도 있어야 하고, 일정한 수입이 보장되는 직업도 있어야 하고, 부모 친척 지인들에게 인정받는 생활도 있어야 하고...... .
이 모든 세상의 촘촘한 망 속에서 그들의 사랑, 서로의 상처가 상처에게 온전히 다가갈 수 있을까?
그런 사랑은 소설에서나 가능할 것이다. 아니 우리의 꿈에서나 가능할 것이다. 내가 그 소년이었으면 어떻게 했을까?
여러 변명을 하며 그녀를 떠났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어느 날 미하엘을 홀연히 떠났던 것이다.
인간 세상은 고해(苦海), 고통의 바다다. 서로가 서로의 손이 되고 발이 되어야 고해를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고통의 바다에 빠져 헉헉대는 인간이 남의 상처를 생각할 겨를이 있을까? 그래서 아프다.
그녀의 삶이 너무나 서럽고 아프다. 끝까지 문맹임을 숨기려 무기징역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 고상한 마음을 지닌 게 인간인데, 그 고상한 마음에게 우리는 다가갈 수 있을까? 전 생애를 걸고.
그녀는 22년 형을 살고 모범수로 가석방된다. 하지만 가석방을 앞두고 자살하고 만다.
자신이 지은 죄가 너무나 커 더 이상 세상 속에서 살아갈 용기가 없었을 것이다. 또한 미하엘과의 사랑을 고이 간직하고 싶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