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회귀

by 고석근

영원회귀



중국 사극 ‘수당연의’를 보며 오늘날도 무한히 반복되고 있는 ‘제왕을 향한 피비린내 나는 권력 투쟁의 원형’을 본다.


권모술수에 능한 둘째 아들 양광(수나라 2대 황제 양제)은 장남 태자 양용을 음모에 빠뜨려 폐위 당하게 한다.


태자가 된 양광은 아버지인 문제 양견의 약탕에 독을 조금씩 넣어 문제를 시름시름 앓게 한다.


문제가 그의 야욕을 눈치 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양광은 뒷방 늙은이로 추락한 문제를 목 졸라 죽인다.


제왕의 권력 승계는 이리도 잔혹하다. 그런데 그 권력 승계방식이 지금도 계속 반복되고 있지 않는가?


우리는 여러 언론 매체를 통해 재벌들의 권력 승계가 얼마나 잔혹한지를 어렴풋이 알고 있다. 민주사회의 여러 선거들도 잔혹하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권력 승계를 향한 투쟁이 아예 없는 사회도 있었다. 원시부족사회, 그 사회에서는 부족장이 권력이 없었기에 그 자리를 향한 투쟁이 없었다.


인간 사회에 권력이 자리를 잡게 된 것은 ‘농업 혁명’ 이후였다. 농업은 먹고 남는 식량을 생산했다.


그전에는 산과 들, 강에서 먹을 만큼만 식량을 얻었다. 먹고 남는 게 없으니 소유 관념 자체가 없었다.


농업을 하며 인간은 소유를 알게 되었다. 이때부터 인간사회에 권력이 생겨났다. 먹고 남는 잉여 생산물을 누가 갖게 되는가?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생산물은 엄청나게 늘어났는데, 그 생산물을 소수가 독점하게 되면서 대다수 사람들의 삶은 궁핍해졌다.


이 잉여생산물을 합법적으로 갖게 되는 권력, 그 권력을 향한 피비린내 나는 투쟁의 역사가 열리게 되었다.

이 무렵 제왕의 승계를 거부한 사람들도 있다.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중국의 백이와 숙제, 그들은 은나라 말엽의 인물들이다.


이들은 아버지인 고죽군이 제왕을 맡아달라고 하자 사양했다. 제왕의 자리를 마다하는 이들은 지금도 우리의 귀감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후 주나라가 들어서고 춘추전국시대가 되고 진시황이 천하통일을 하면서 제왕은 절대 지존이 되어갔다.


이 절대 지존을 향한 권력 투쟁은 무한히 반복되고 있다. 인간은 이제 누구나 크고 작은 제왕의 자리를 향한 무한 투쟁의 장에 들어섰다.


현대 사회의 제왕은 돈이다. 돈을 향한 무한 투쟁, 어느 누구도 이 투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는 누가 결혼한다고 하면 직업부터 물어 본다. ‘얼마만큼 돈의 신에게 가까이 가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면서 돈의 신을 경배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의 일상은 항상 비상사태다.


조금만 방심하면 부모와 자식이고, 형제이고, 동료이고, 연인이고, 관계가 없다. 어디서 어느 누가 내 목숨을 해치고, 내 지갑의 돈을 강탈해 갈지 모른다.


돈을 향한 권력 투쟁의 영원회귀, 우리는 계속 반복해야 할 것인가? 그렇게 허망하게 권력의 꼭두각시로 살다가 죽어야 할 것인가?


우리는 이 무한한 군력 투쟁의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우리의 아주 멋 옛날의 조상님들이 했듯이, ‘짱’에게 돈과 권력을 주지 않는 것이다.


인간이 세속적으로 원하는 것은 딱 세 가지다. 돈, 권력, 명예. 이 중에서 짱은 명예만 갖게 하는 것이다.


재발 회장, 대기업 사장, 대통령, 국회의원, 장차관, 특별시의 시장, 도지사들의 자리를 돈과 권력이 없는 명예직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이미 일부 선진국에서 부분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 마음만 합치면 천지개벽을 이룰 수 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최고 높은 자리가 명예밖에 없는 자리가 되면 차츰 아래에 있는 자리들도 자연스레 명예밖에 없는 자리로 바뀌어 갈 것이다.


명예만 있는 부모 자리, 대학 총장 자리, 초중고의 교장 자리, 학교 담임 자리, 시장 자리, 동장 자리, 군수 면장 자리, 각종 기관과 단체장의 자리...... .


얼마나 사는 게 신날까? 이런 꿈이 단지 꿈으로 끝날까? 인류 역사에서 제왕이 있는 역사는 수천 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제왕이 없던 기간은 무려 수만 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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