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學習)
시민 단체에서 활동할 때, 진보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들도 ‘자녀 교육’에 대해서 만큼은 보수적인 사람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 느꼈던 적이 많았다.
공교육의 정상화를 부르짖는 사람들이 자신의 자녀에게는 몰래 고액 과외를 시키고 외고, 특목고에 보냈다.
처음에는 그런 모순된 행동들에 대해 의아해했는데, 차츰 그들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들은 위선자가 아니었다. 고대 그리스의 철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에게는 세 가지의 정신 영역이 있다고 했다.
로고스(이성), 파토스(감성), 에토스(삶의 태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에토스가 그 사람의 진면목을 보여준다고 했다.
로고스는 언어로 이루어진 정신이다. 언어는 뇌에 기억된 것들이라 자신의 생각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은 말했다. “나는 생각하는 곳에 존재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는 곳에 존재한다.”
우리는 사람의 말을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사람은 기억된 것들을 상황에 맞게 앵무새처럼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학교 교육은 단편적인 지식위주의 교육이다. 이런 교육을 오랫동안 받다 보면, 머리에 기억된 것들이 자신의 생각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그래서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는 보수적인 것이다.
사람의 행동을 좌우하는 건, 에토스, 몸에 배인 삶의 태도다. 동양의 공부는 학습이었다.
배워서 익히는 공부, 올바른 에토스를 갖게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 공부 방법을 복원해야 한다.
우리의 마음을 잘 살펴보면, 머리에 기억된 것들과 몸에 배인 삶의 태도가 서로 충돌하고 있다는 게 보일 것이다.
머리로는 자녀를 자유롭게 기르고 싶은데, 자라면서 부모에 의존하며 살아왔기에 자신도 모르게 자녀를 어떤 틀에 가두고 있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불교의 수도(修道) 방식은 두 가지다. 단박에 삶의 실상을 깨쳐 삶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 돈오돈수(頓悟頓修)다.
이와 달리 단번에 깨달았다고 할지라도 아직 나쁜 습성이 남아 있기 때문에 꾸준히 수행해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 있다. 돈오점수(頓悟漸修)다.
사람에 따라 깨달음과 수행의 방법이 다를 것이다. 중요한 건, 삶의 태도가 달라지는 것일 것이다.
나는 언젠가부터 우리 아이들을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자라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생각을 쉽게 실천하게 된 것은 장 자크 루소의 교육론에 대한 강렬한 감동도 있었지만, 내 몸에 배인 자연이었다.
나는 시골에 가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마음이 한없이 평온해진다. 이런 습성에다 루소의 교육론의 세례를 받았으니 나는 쉽게 지행합일(知行合一)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버려야 할 습성이 아주 많다. 어릴 적 가난하게 자란 티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조금만 화려한 곳에 가도 주눅이 든다. 지금은 소위 중산층은 되었는데, 이 습성이 떨쳐지지 않는다.
주눅 든 마음은 건강하지 못하다. 이 마음은 나 자신도 모르게 말과 행동이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우리는 머리로 배우고 몸으로 익히는 공부를 한평생 해야 한다. 진짜 나로 살아가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