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이 아름답다
언젠가부터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되었다.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그것이 이 시대의 큰 흐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민주주의는 각자가 주인이 되는 정치 체제다. 그 전에는 몇몇 소수가 한 나라의 주인이었다.
그때는 작은 것은 다루지 않았다. 그러다 산업사회가 도래하면서 동시에 민주주의 사회가 열렸다.
‘소설(小說)’이 문학의 주류로 등장했다. 그야말로 ‘작은(小) 이야기(說)’가 새로운 문학의 주된 양식으로 대
두한 것이다.
그 이전에는 시(詩)가 중심이었다. 소설의 양식을 띤 것들도 작은 이야기를 다루지 않았다.
왕, 귀족 같은 특별한 사람들이 주인공이었다. 근대 소설에서는 보통 사람들이 주인공이 되었다.
산업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하면서 개인이 더욱 더 중요해졌다. 개인의 자유와 평등이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었다.
우리는 이제 거대한 것을 거부하게 되었다. 소확행,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게 되었다.
그런데 정말 소확행이 가능할까? 소소한 것에서 확실한 행복이 가능할까? 겉으로 보면 소확행을 누리는 멋진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가 존경해마지 않는 문인들 이백, 도연명, 김삿갓..... 아주 많다. 하지만 그들이 정말 소소한 것들을 추구하고 살았을까?
그들의 가슴에는 웅대한 꿈이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다. 그 꿈이 뜨겁게 불타오를 때, 그들은 소소한 일상에서 커다란 행복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세상에 작은 것은 없다. 모래 한 알에 우주가 있고, 꽃 한 송이에 천국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작은 것에서 작은 것만 보는 눈을 가지고는 소소한 일상에서 확실한 행복을 찾을 수가 없다.
항상 큰 것을 부러워할 것이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위로할 것이다. ‘소박한 삶이 최고야!’
이것은 자기기만이다. 이렇게 살아가는 소시민들은 로또 복권이라도 당첨되면, 소소한 것들을 하루아침에 멀리하게 된다.
남자가 로또 복권에 당첨이 되면 아내를 바꾼다고 하고, 여자는 얼굴을 바꾼다고 하지 않는가?
이런 탐욕을 가슴 깊숙이 숨기고 살아가는 소시민들이 어떻게 소소한 일상을 누릴 수 있겠는가?
소확행을 누리려면 우리는 소시민을 벗어나 ‘대시민(大市民’)이 되어야 한다. 이 시대, 이 사회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긴 역사의 눈으로 이 시대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때 작은 것, 소소한 일상들이 찬란하게 빛나게 된다.
포도주 통에 한가로이 누워 따사로운 햇빛을 즐기는 디오게네스가 될 수 있다. 알렉산더 같은 권력자가 찾아와 돈과 권력을 준다고 해도 “내게는 햇빛이 더 중요합니다.”하고 말할 수 있다.
소확행은 경지이지 마음을 먹는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그래서 이 말의 기만성을 꿰뚫어보는 말이 등장했다.
소확행, 소비가 확실한 행복이다. 현대사회는 소비사회다. 엄청난 생산물을 소비하기 위한 고도 자본주의의 생존 전략으로 등장했다.
소소한 일상에서 확실한 행복을 누린다고 믿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마음을 진지하게 들여다보아야 한다.
‘나는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누리고 있는가? 아니면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소비하고 있는가?’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하려면 자신을 속이지 말아야 한다. 인간의 진짜 마음은 자신도 모르는 무의식에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을 속이는 줄도 모르고 자신을 속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온 마음을 다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깊은 내면의 소리가 진짜 우리의 마음이다. 깊은 내면의 소리에 따라 살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소소한 일상의 빛과 향을 우리는 온 몸으로 누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