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고석근


한 승려가 조주 선사를 찾자와 겸손한 자세로 말했다.

“빈손으로 왔습니다.”

“그러면 내려놓게.”

“아무것도 없는데 무엇을 내려놓습니까?”

“그럼 계속해서 들고 있게.”


- 조주, <조주어록>에서



오랜만에 중학교 동창 ㄱ과 문자를 주고받았다. 서로 ‘어떻게 지내느냐?’고 묻고 답했다.


그는 여전히 바쁘게 지낸다는 얘기를 했다. 현직에 있을 때 알고 지내던 퇴직 교장들과 등산, 당구, 섹소폰, 자전거 라이딩을 즐기고 있다고 했다.


우리가 흔히 하는 인사말, ‘바쁘시죠?’ 나는 처음에는 진지하게 답했다. “아뇨, 요즘은 바쁘지 않아요.”


그가 정말 내가 바쁜지 한가한지 알고 싶어 하는 줄 알았다. 그럴 때마다 그들은 어색하게 웃으며 뭐라고 웅얼거렸다.


몇 번 그런 경험을 하며 세상 물정에 어두운 나도 그 인사말이 의례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쁘시죠?’를 ‘잘 나가시죠?’로 들으면 되는구나!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마을에서 최고의 미녀로 통했던 한 여고생의 연애편지 심부름을 한 적이 있다.


하교 길에 남자 고등학생들이 나를 불러 세웠다. 그때 그 아이들이 얼마나 커 보였는지, 나는 부동자세로 섰다.


그들은 킥킥 웃으며 그 여고생에게 편지를 전해달라고 했다. 나는 이 행위가 아주 비밀스러운 것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나는 그 여고생의 할머니가 안 계실 때 그녀에게 편지를 몰래 전해 주었다. 몇 번 첩보 행위를 하다가 그 할머니에게 들키고 말았다.


그 할머니는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내게 편지를 크게 읽으라고 했다. 마당에 서서 연애편지를 낭송하는 내 모습은 얼마나 우스꽝스러웠을까?


그때도 그 남자 고등학생들은 내게 말했었다. “그 애 잘 나가지?” 나는 의아스러운 표정으로 그들을 보았다.

‘잘 나가다니? 그녀가 밖에 자주 나간다는 말인가?’ 그들은 킥킥거리며 멀뚱하게 서 있는 내게서 멀어져갔다.

‘잘 나간다’는 말은 ‘출세(出世)’라는 한자말에서 유래했을 것 같다. ‘세상에 나가다.’ 집에 있는 사람은 나갈 데가 없는 사람이다.


‘집에 있다’는 건 ‘집에서 논다’는 말과 동의어로 쓰이고 있다. 나는 집에서 논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에도 의아하게 생각했었다.


‘집에서 놀면 안 되는 거야?’ 많은 사람들이 나를 말귀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형광등’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나중에서야 내가 형광등인 이유를 알았다. 내 성격, ‘INFP(이상주의자)’ 탓이었다.


나는 주로 내 생각 속에 빠져 산다. 나의 생(生) 에너지는 주로 안으로 향해 있다. 그러니 밖의 상황에 대해서는 어둡다.


나는 남들과 대화를 하는 중에도 ‘나의 성(城)’에 갇혀 있다. 남들의 말이 토막토막 들려온다.


나는 근성으로 ‘응응’하고 대답한다. 분위기에 맞는 표정을 짓는다. 강의할 때는 교묘하게 연기를 해야 한다.

나의 이런 진면목을 사람들은 알까? 아내는 정확하게 나를 꿰뚫어 본다. 나와 대화를 하다가 가끔 다그친다.

“지금 내 말 안 듣고 있지?” “아니, 잘 듣고 있어.”하고 대답하면, “지금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잖아.”하고 윽박지른다.


내 안에 갇혀 사는 나는 대신 세상사를 남들과 다르게 보는 힘이 있다. 상식적이지 않으니 비상식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중국의 뛰어난 선승, 조주 선사는 말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일 없는 것보다는 못하다.”


다들 일을 칭송하고 있을 때 나는 일 없음을 찬양한다. 남들이 질주할 때 나는 한가하게 걷는다.


거창하게 말하면 장자의 소요유(逍遙遊)다. 내가 어릴 때는 어슬렁거리는 어른들이 많았다.


그들은 참으로 한심해 보였었다. 항상 꾀죄죄한 옷을 입고 헤헤거리며 이곳저곳을 쏘다녔다.


그들은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생충 같았다. 이제 그들은 편의점 밖에 내 놓은 의자에 앉아 막걸리 잔을 기울이고 있다.


그들의 얼굴은 전혀 바쁘다는 표정이 아니다. 하지만 한가함을 즐기는 얼굴 표정도 아니다.


이 세상이 그들을 루저(낙오자)로 보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사실 그들과 같은 종(種)인데 나는 작가, 인문학 강사의 가면을 쓰고 있다.


나는 그 가면으로 내 얼굴을 숨기고 이 세상을 어슬렁거리며 살아간다. 정말이지 일 없는 게 최고다.


내가 어슬렁거리면 시간도 어슬렁거린다. 이 세상이 함께 어슬렁거린다. 모든 사람이 다 함께 어슬렁거리며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대학원에서 상담심리를 공부하는 한 제자가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한번 되고 나면 너무나 편한 직업이 딱 두 개 있대요.”


“뭐죠?”하고 물으니까 그녀가 픽 웃으며 대답한다. “노숙자와 대학 교수래요.” 나도 모르게 ‘풋!’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언제 들어도 집단지성의 산물인 ‘시중에 떠도는 우스개’는 재미있다. 촌철살인이다. 대학 교수들이 이 말을 들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 우스개에는 우리들의 속마음이 깊이 감춰져 있을 것이다. ‘편안하게 살고 싶다!’ 언젠가는 우리들의 소망이 이루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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