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음과 쓸모있음

by 고석근

쓸모없음과 쓸모있음


산에 있는 나무는 사람들에게 쓰이기 때문에 잘리어 제 몸에 화가 미치고, 등불은 밝기 때문에 불타는 몸이 된다. 계수나무는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베어지고 옻나무는 그 칠을 쓸 수 있기 때문에 잘리고 찍힌다. 사람들은 모두 쓸모 있는 것만 알지, ‘쓸모없는 것 가운데 쓸모가 있다(무용지용 無用之用)’는 사실은 모르니 한심한 일이다... 나는 쓸모 있음과 없음의 중간에 머물고 싶다.


- 장자, <장자 제4편 인간세(人間世)>에서



나는 오랫동안 ‘장남’으로 살았다. 나는 부모님에게 ‘쓸모 있는 장남’이라는 것을 눈치 채고는 장남으로 변신한 것이었다.


오랜 장남 역할은 나를 지치게 했다. 30대 중반에 나는 장남을 훌훌 벗어버리고,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 세상을 떠돌았다.


나중에 회상해보면 이 방황의 시간이 나에게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다. 나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 시간이었다.


나무는 땅 속으로 뿌리를 뻗은 만큼 위로 크게 자란다고 한다. 그 방황의 시간은 내가 땅 속으로 뿌리를 내리는 시간이었다.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대학에서 공부를 마친 후 몇 년 동안 백수로 지냈다고 한다. 그 기간에 읽었던 책들이 그를 위대한 신화학자로 만들었다고 했다.


그는 쓸모없는 시간을 잘 보냈기에 후에 크게 쓰일 수 있었다. 만일 백수일 때 세상을 한탄하며 시간을 흘려보냈다면, 막상 세상이 필요로 할 때 그는 전혀 쓸모가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으니 군자가 아니겠는가?”


공자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을 때, 분명 노여움이 일어났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생각해보았을 것이다.


‘이게 노여워할 일인가?’ 왜냐하면 세상이 알아주지 않을 때, 자신이 쓸모없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더욱 더 공부에 정진했을 것이다. 쓸모없음과 쓸모있음은 항상 하나로 어우러져가기에.


이 세상은 언뜻 보면 모순으로 보이지만, 서로 반대되는 것들이 항상 함께 있다. 여기서 쓸모가 없으면 다른 곳에서는 귀히 쓰일 수 있다.


따라서 쓸모없는 인간일 때는 쓸모가 있는 인간일 때를 대비하여 차분히 준비해야 한다.


쓸모 있는 인간일 때는 쓸모가 없을 때를 대비하여야 한다. 깊은 절망의 늪에 빠진 한 퇴직 교장이 있다.


그는 오랫동안 ‘쓸모 있는 인간’에 취해 있다가 쓸모가 없어져 교문을 나오게 되자 갈 곳을 잃어버렸다.


그가 생각을 바꿔 쓸모없는 인간으로 변신한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면 좋을 텐데.


그러면 그의 앞에 어떤 새로운 쓸모가 기적처럼 나타날 텐데. 언젠가 ‘포스트잇’의 발명 비화를 읽은 적이 있다.


포스트잇은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는 접착제가 붙은 메모지를 말한다. 이 접착제는 실패한 발명품이었다고 한다.


쉽게 떨어지는 접착제는 접착제로서 쓸모가 없었다. 하지만 쉽게 떨어지는 접착제가 포스트잇으로 쓰이자 아주 쓸모 있는 접착제가 되었다.


세상사가 이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목적에 자신을 맞추면 쓸모없는 인간 같아도 다른 목적에 맞추면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기적이 일어난다.


그래서 장자는 ‘쓸모 있음과 없음의 중간에 머물고 싶다’고 했다. 중간은 물리적인 중간이라는 뜻이 아니다.

양극단을 포함하는 중(中)이다. 쓸모없음과 쓸모있음을 다 포함하는 넓은 마음을 말한다.


언제고 스스로 쓸모있음도 되고 쓸모없음도 되는 자유로운 인간이 되겠다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에 따라 쓸모있음과 쓸모없음을 결정하는 인간, 가고 싶은 대로 가는 인간, 바로 소요유(逍遙遊)의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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