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하는 인간
나는 호모 파베르(도구의 인간) 바로 옆에, 그리고 호모 사피엔스(생각하는 인간)와 같은 수준으로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를 인류 지칭 용어의 리스트에 등재시키고자 한다.
- 요한 하위징아, <호모 루덴스>에서
그저께 공부모임에서 한 회원이 작년에 대학을 졸업한 큰 딸이 ㅅ 전자 입사 시험에서 떨어졌다고 한탄을 했다.
언젠가 술집에서 한 중년 남자의 한탄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우리 집에 가면 어떤지 알아? 다 큰 두 아들이 누워 있어.”
대학까지 시켜놨는데, 집에서 놀고 있는 다 큰 아들들, 상상만 해도 끔찍한 풍경이 아닌가?
하지만 이것은 ‘현대인의 시각’이다. 인간은 이렇게 일하려 아등바등하지 않았다. 인류사 전체로 보면, ‘일하는 인간’은 특이한 존재다.
산업혁명이 일어나 급격히 산업화가 진행되던 영국에서는 노동자를 구할 수 없어 애를 먹었다고 한다.
산업 혁명 이전의 인간은 열심히 일을 하지 않았다. 중세의 노동 시간은 하루 평균 4시간 정도였다고 한다.
조선 시대도 그 정도의 일을 했다고 한다. 그때는 잔치가 얼마나 많았는가? 또 밤에는 일을 하지 못하고 겨울에도 일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 근대의 산업사회가 등장하면서, 공장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농사는 열심히 일을 해도 생산량이 별로 늘어나지 않지만, 공장에서는 일하는 시간만큼 생산량이 늘어났다.
농사를 지으며 한가하게 살아가던 사람들은 산업화한 도시에서 적응하기가 힘들어 많은 사람들이 거지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자 정부에서는 거지 면허증을 발급해 거지의 수를 제한했다고 한다. 또한 그 동안 시행하던 복지제도도 없애버렸다고 한다.
인간은 오랫동안 놀이하며 살아왔다. 전체적으로 보면 일하는 시간보다 놀이하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
이런 ‘놀이하는 인간’을 ‘일하는 인간’으로 개조한 것이 학교다. 초등학교에서는 시간 지키기부터 가르쳤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시간에 맞춰 일하지 않는다. 천지자연의 이치에 맞춰 일했다.
학교는 그런 인간을 시계에 맞춰 일하는 인간으로 재탄생시켰다. 수업 시간과 쉬는 시간은 일정했다.
아무리 어떤 과목의 시간이 신나도 40분, 45분, 50분 후에는 반드시 쉬어야 했다. 이런 교육을 오래 받다보면 드디어 일하고 쉬고를 무한히 반복할 수 있는 일하는 인간이 발명된다.
이제 우리는 일하고 싶어 한다. “일하지 않은 인간에게는 밥도 주지 말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중세 사람들은 주로 술을 마셨다. 일하면서도 술을 마시고 일하지 않을 때도 술을 마셨다.
이제 우리는 커피를 마시며 온종일 근면 성실하게 일을 한다. 퇴근한 후 밤에는 술에 취해 노래를 부른다.
노동시간이 차츰 줄어들고 있다. 갑자기 쉬는 시간이 늘어나자 사람들은 안절부절 못한다.
퇴직한 사람들도 일거리를 찾아 헤맨다. 일하지 않는 사람들은 무슨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처럼 죄의식을 느낀다.
닉네임을 ‘루덴’으로 지은 한 중년 남자 분이 공부모임에 왔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일하는 인간에서 놀이하는 인간으로 재탄생하려 합니다.”
그는 새로운 시대의 인간형이다. 앞으로는 일은 주로 인공지능이 하고 사람은 창조적인 일을 하게 될 것이다.
놀이하는 인간만이 창조를 할 수 있다. 창조를 하지 못하는 근면 성실한 인간은 차츰 퇴장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