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와 실재

by 고석근

허구와 실재


호모 사피엔스는 어떻게 해서 이 결정적 임계치를 넘어 마침내 수십만 명이 거주하는 도시, 수억 명을 지배하는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을까? 그 비결은 아마도 허구의 등장에 있었을 것이다.

서로 모르는 수많은 사람이 공통의 신화를 믿으면 성공적 협력이 가능하다. 인간의 대규모 협력은 모두가 공통의 신화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그 신화는 사람들의 집단적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 현대 국가, 중세 교회, 고대 도시, 원시 부족 모두 그렇다.


-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에서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인간이 동물과 달리 큰 집단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은 수만 년 전에 일어난 ‘인지혁명’ 때문이라고 말한다.


인지혁명은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이다. ‘허구’의 등장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조직 속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잠시만 인류사를 훑어보아도 잘 알 수 있다. 문제는 그것이 정말 허구냐는 것이다.


얼마 전에 ‘울프 토템’이라는 중국 영화를 본 적이 있다. 1969년, 베이징의 한 젊은 대학생 첸 젠은 유목민 부족을 가르치기 위해 내몽고로 보내진다.


그는 내몽고 유목민들과 함께 공동체 생활을 하며, 자유와 책임의 중요성에 대해 깨닫게 된다.


그는 늑대에 매료되어 늑대 새끼를 구해 몰래 키우게 된다. 그때 중앙정부는 부족민들을 다른 곳으로 이주하기 위한 전략을 세운다.


정부에서는 그 지역의 늑대들을 모두 제거하기로 결정한다. 늑대가 사라지면, 토끼 같은 초식 동물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엄청난 초식동물들은 초원의 풀을 순식간에 사라지게 할 것이다. 풀이 사라진 곳에서 유목민들은 살아갈 수가 없다.


늑대는 그 부족의 ‘토템’이었다. 부족민들은 늑대를 자신들의 신으로 숭배하며, 초원을 지켰던 것이다.


유발 하라리는 “수많은 사람이 공통의 신화를 믿으면 성공적 협력이 가능하다... 그 신화는 사람들의 집단적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내몽고 부족민들이 ‘울프 토템’이라는 신화를 만들어 부족민 전체의 협력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맞다. 하지만 그 신화가 ‘부족민들의 집단적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허구’인가? 울프 토템은 실재였다.


그 늑대가 사라지면 인간도 사라지게 된다. 물질적 토대와 정신적 토템은 하나였던 것이다.


그 부족민들의 삶에서 그 둘은 구분이 될까? 인도의 ‘소 숭배’, 고대와 중세의 ‘종교’, 근대의 ‘민족’... 인류의 모든 신화들은 크게 보면 ‘울프 토템’과 같다.


서양은 오랫동안 물질과 정신을 구분해왔다. 그래서 유발 하라리의 눈에 세상이 둘로 나눠져 보였던 것이다. 동양에서는 물질과 정신을 구분하지 않았다.


모두 기(氣)로 보았다. 삼라만상을 기의 작용으로 보면 유발 하라리가 말하는 허구는 허구가 아니라 실재가 된다.


근대 물리학에서는 물질과 정신을 구분한다. 하지만 현대의 양자물리학에서는 그 둘을 구분하지 않는다.


물질의 기본 단위인 원자는 사실 에너지다. 이 세상이 물질로 보이는 것은 우리의 감각 때문이다.


물질은 파동이 낮은 에너지가 우리의 감각의 의해 지각된 것들이다. 지각되지 않은 에너지는 텅 빈 공간이다.

내몽고 유목민들은 이 이치를 직감적으로 알았을 것이다. 그들은 오랫동안 경험을 바탕으로 살아왔으니까.

우리는 근대 서양인들처럼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배웠다. 따라서 우리 눈에 물질과 정신이 둘로 나눠져 보인다.


우리가 이 세상의 진실을 알려면 이성적 지성을 넘어서야 한다. 통찰의 눈으로 세상을 봐야 한다.


이 세상은 실재와 허구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눈부신 춤이다. 현실과 환상의 경이로운 앙상블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놀이하는 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