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善)과 악(惡)

by 고석근

선(善)과 악(惡)


파우스트가 그에게 접근한 메피스토펠레스에게 물었다. “대관절 자네는 뭘 하는 자인가?”

메피스토펠레스가 대답했다. “항상 악을 탐하면서도 오히려 늘 선을 이룩하는 그 힘의 일부입니다.”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파우스트>에서


세상의 모든 지식들을 두루 섭렵한 노년의 파우스트 박사는 깊은 회의에 빠진다. 도무지 살맛이 나지 않는 것이다.


‘이성(理性)적인 현대인들’이 겪는 보편적인 고통이다. 머리에 가득한 지식으로 잘 살아왔는데, 어느 날 우울과 권태가 파도처럼 밀려오는 것이다.


파우스트는 어떻게 구원되는가? 그는 우리에게 구원의 모델을 보여준다. 그는 악의 화신, 메피스토펠레스를 만난다.


선을 추구하고 사는 사람은 악을 만나야 하는 것이다. 선이 빛이라면 악은 어둠이다.


빛은 어둠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파우스트가 빛만 추구하고 살아왔기에 삶의 반쪽이 사라져버리게 된 것이다.


이때 우리는 공허감을 느끼는 것이다. 삶이 전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전체로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

바로 어둠을 받아들여야 한다. 언젠가 불현듯 어둠이 찾아온다. 이 어둠을 만났을 때, 우리는 파우스트처럼 물어야 한다.


“도대체 너는 누구냐?” 이 물음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내면에서 들려오는 이 소리를 외면해 버린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사람처럼, 일상 속으로 들어간다. 권태에 진저리를 치며 말초적인 쾌락으로 하루를 버텨낸다.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고 그는 시들시들해진 몸으로 삶을 마감하게 된다. 우리는 메피스토펠레스를 환대해야 한다.


파우스트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다시 젊어져 자신의 욕망대로 살아간다. 이것은 비유(알레고리)로 읽어도 될 것이다.


우리는 삶의 회의, 위기가 왔을 때,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다시 젊어져 욕망대로 살고 싶은 마음’을 솔직히 보아야 한다.


그 욕망을 사실대로 바라볼 수 있을 때, 구원의 길이 열린다. 선(빛)만 추구하고 살다보면 욕망은 깊숙이 숨겨진다.


그림자가 된다. 바로 악(惡)이다. 악은 글자 그대로 버금가는(亞) 마음(心)이다. 진짜 마음은 성(性)이다.

태어날 때 갖고 있는 마음(본성本性)은 맹자가 말하는 인의예지(仁義禮智)가 있는데, 살아가면서 선을 추구하게 되면서 악이 생겨난다.


이 악은 우리의 그림자, 우리가 숨겨 놓은 마음이기에 밖으로 드러내야 한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과 다시 하나가 된다.


본성으로 들어온다. 메피스토펠레스가 말하듯 ‘항상 악을 탐하면서도 오히려 늘 선을 이룩하는 그 힘의 일부’가 된다.


인의예지를 아는 마음이 된다. 이런 온전한 마음은 아름다움으로 빛난다. 이 세상이 다 화엄(華嚴), 꽃으로 장엄한 세상이 된다.


파우스트는 어느 날 외친다. “오, 삶이여! 너는 너무도 아름답도다. 멈추어라!” 그는 ‘영원한 찰나’를 경험하는 것이다.


그때 하늘에서 천사들이 내려와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는 구원받을 수 있다”고 노래하며 그의 영혼을 구원한다.


시간은 없다.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져가는 시간은 우리의 관념이 지어낸 착각이다.


진짜 시간은 오로지 현재, 찰나다. 이 찰나를 만나려면 우리의 마음이 온전해져야 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