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自由)

by 고석근

자유(自由)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나 자신에게 묻지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무엇을 하는가?’, ‘잠자고 있네’, ‘그럼 잘 자게’,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무엇을 하는가?’, ‘일하고 있네’, ‘잘해보게’, ‘조르바, 자네 지금 이 순간에 무엇을 하는가?’, ‘여자에게 키스하고 있네’, ‘조르바, 잘해보게. 키스를 하는 동안 딴 일일랑은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네. 자네와 그 여자밖에는. 키스나 실컷 하게’라고 말입니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우리는 자유를 ‘마음대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막상 무언가를 마음대로 해 보았을 때 우리는 자유로움을 느끼지 못한다.


동물들은 어떤 행위를 했을 때, 무한히 자유로움을 느낄 것이다. 배가 고프면 동물들은 오로지 먹는 것에만 집중한다.


그러다 배가 부르면 먹는 것을 멈춘다. 상황에 알맞게 행위를 하는 힘, 이 절제가 동물을 무한히 자유롭게 할 것이다.


배가 부른대도 꾸역꾸역 먹는 인간과 너무나 다르지 않는가? 절제를 하지 못하는 인간은 자유로울 수가 없다.


동물이 자유로운 것은 그들이 철저하게 본능(本能)의 명령에 따르기 때문이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본능적인 행동이 그들을 자유롭게 한다.


그럼 인간은 어떻게 해야 자유로울 수 있을까? 본능대로 살아가면 될까?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라 본능대로 살아갈 수가 없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어린 시절에 다른 인간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간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동물적 본능은 욕망이 된다.


욕망은 동물적 욕구가 왜곡된 환상이다. 그래서 인간은 마음대로 살아가면 결국에는 욕망의 노예가 되어 버린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자유로울 수 있을까? 조르바처럼 살아가야 한다. 그는 오로지 이 순간에만 집중한다.


마음과 몸이 하나인 행위는 자신도 모르게 절도가 있게 된다. 밥을 먹을 때 밥 먹는 일에만 정신을 집중하면, 우리 마음의 깊은 곳에 있는 본성(本性)이 그 행위를 적절하게 제어해 준다.


독일의 철학자 임마뉴엘 칸트는 말했다. “나에게 커다란 감탄과 경외로 내 마음을 가득 채우는 것이 두 가지 있다. 내 머리 위에 촘촘히 빛나는 별들과 내 가슴속에 있는 도덕법칙이 그것이다.”


칸트가 말하는 도덕법칙, 그것이 우리 내면에 있다. 동물에서 인간으로 진화하면서 형성된 본성이다.


이 본성에는 유교에서 말하는 인의예지(仁義禮智),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말하는 진선미(眞善美)가 있다. 조르바는 항상 이 본성의 명령에 따라 살아갔던 것이다.


이러한 조르바의 삶은 칸트가 말하는 하늘의 별빛을 따라 살아가는 삶이 된다. 조르바의 삶은 천지자연의 운행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공자는 나이 70이 되었을 때 말했다.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따라도 그것이 법도를 벗어나지 않았다. 종심소욕 불유구. 從心所欲不踰矩.”


공자는 매순간 천명(天命)을 두려워하며 자신의 마음을 성찰하였기에, 마음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마음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져 있다고 한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카잔차키스는 조르바를 통해 욕망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사는 길은 물에게 온전히 몸을 맡기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인생의 고해(苦海)에 빠져 있다. 욕망을 갖게 된 인간의 슬픈 숙명이다.


물에 빠져 마음대로 발버둥을 치는 것은 자유가 아니다. 자신을 온전히 버려야 한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마음이 되어 물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때 우리는 마음대로 물위를 떠 갈 수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선(善)과 악(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