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죄

by 고석근

원죄


나는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러 왔다. - 예수



새로운 강의 요청이 들어왔다. ‘공동 육아 협동조합’을 하시는 분들이라 가슴이 설레었다. 미리 만나 강의에 대해 논의하잔다. 술집에서 만나기로 하고 집을 나서는데 아내가 한 마디 한다. “술 마시고 해롱해롱하지 마!”


“응.”하고 대답을 하고 나왔지만, 나 자신도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술에 취해 기분이 좋아지면 나는 한순간에 ‘즐거운 아이’가 되어 버린다. 세상 사람들이 다 꽃처럼 예쁘게 보인다.


지난주엔 술을 마시다 화장실에 갔는데 문이 잠겨 있다. 기다리고 있으니 한 청년이 나온다. 나도 모르게 오른 손바닥을 활짝 펴고 그의 앞에 올렸다. 그러자 그는 씩 웃으며 내 손바닥을 짝 쳤다.


자리로 돌아오며 ‘참, 내가 왜 그랬지? 자식 같은 젊은이한테. 나를 뭐라고 생각할까?’하고 생각했지만 마냥 즐거웠다. 술에 취한 채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차들이 장난감처럼 보였다. 살짝 부딪쳐도 괜찮을 것 같았다.


술집에서 만나 보니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란다. 몇 분이 더 오고 술기운이 도도하게 피어올랐다. 시 얘기를 하다 시낭송까지 했다. 마음들이 물결처럼 일렁이고 술집은 출렁출렁 어둠 속을 흘러갔다.


내가 이렇게 술을 마시고 해롱거리게 된 건 얼마 되지 않는다. 항상 꼿꼿했었다. “네 주량


을 모르겠어.” 친구들은 그렇게 얘기했다. 그러다 문학을 접하면서 마음이 풀어지기 시작했다.


소설가 카프카는 ‘무관심은 불안과 죄의식에 의한 신경장애를 방어하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내 얼굴이 ‘데드 마스크’ 같다고 했다. 나는 무관심으로 단단히 무장하고 내 삶을 버텼던 것이다.


하지만 내 안엔 ‘아이’가 있었다. 즐겁게 놀지 못한 아이,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항상 주눅 든 아이는 내 안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다 문학이 그를 불러내자 그는 내 안에서 툭 튀어나와 술집을 마구 휘저으며 뛰어 놀았다.


하지만 다음 날엔 ‘깊은 죄의식’에 시달린다. ‘혹 내가 뭐 실수한 게 없을까?’ ‘나를 뭐라고 생각할까?’ 전전긍긍하다 며칠 후에 강의를 했는데, 그때 함께 술 마신 분들의 표정이 밝다. ‘휴, 다행이야.’



나 지은 죄 많아

죽어서도

영혼이

없으리


- 김종삼,《라산스카》부분



인간은 어쩌다 ‘원죄’를 저지르게 되었을까? 시인은 무슨 큰 죄를 지었기에 죽어서도 자신은 영혼이 없으리라고 생각했을까?


다른 동물들은 본능에 따라 사는데 인간은 율법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율법은 우리 안에서 수시로 판결을 내린다. 우리는 다들 죄수들이다.


예수는 세례로써 모든 죄를 사해주었다. 우리에겐 그런 물이 필요하다. ‘옳은 일’을 한다고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항상 ‘옳은 일’만 행하다 결국 자살해 버린 ‘레미제라블’의 자베르 형사, 그의 죽음은 우리 모두의 죽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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