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by 고석근

장애인


하늘에 서로 꿰어 있는 구슬들이 있는데 하나가 울면 모두 운다. - 석가


장애인 아이가 옆에 앉았다고 장문의 편지를 담임선생님에게 쓴 어머니가 있단다. 그 어머니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된다.

이 치열한 ‘정글’에서 장애인 친구와 지내다가는 정글에서 낙오하지 않을까? 그 어머니는 ‘맹모삼천지교의 심정’으로 편지를 썼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장애인과 더불어 살지 않는 사회’다. 옛날 농경사회가 아니기에 그들과 함께 살 수 있는 게 한계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격리한다.

따라서 우리는 그 어머니를 비난할 수 없다. 똑 같이 들어간 초등학교, 왜 내 지식이 그런 아이 옆에 앉아야 하나?

똑똑한 아이하고 지내 이 정글에서 살아남는 강한 아이가 되어야 하는데. 어떤 어머니들은 강남의 초등학교에도 보낸다는데, 어머니로서 그런 아이와는 못 앉게 해야지.

발목을 다쳐 정형외과에 드나들 때 ‘장애인 체험’을 한 적이 있다. 서러웠다. 무서웠다. 목발로 간신히 버티고 서서 택시를 잡을 때, 택시가 그냥 지나가면 어떡하나? 아, 그러면? 약국 문턱도 얼마나 높은지. 그야말로 이 세상이 정글이었다.

하지만 장애인 체험이 끝난 이제 나는 그들을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거의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내 깊은 생각에서마저도 그때의 공포가 사라졌을까?

아마 내 깊은 무의식 속에서는 ‘그래, 나를 지키는 것은 나밖에 없어.’하고 생각할지 모른다.‘측은지심’이 많이 사라지지 않았을까?

예수가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두고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선 건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을 위해서가 아니다.

그렇게 하는 게 ‘양들을 살게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설령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이 잘못되더라도 나머지 양들이 잘 살 수만 있다면 사실 큰 문제가 없는 것 아닌가?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을 목자가 내버려둔다면 나머지의 양들은 불안해서 제대로 살 수 없을 것이다.

‘우리도 언제 저렇게 될지 몰라.’ 양들은 자신들이 살기 위해 목자를 따르지 않을 것이다.

‘장애인 아이’를 우리가 내버려둔다고 해서 겉으로 봐선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우리는 ‘연약한 그들이 뭐 어떻게 하겠는가? 우리 안의 측은지심이야 뭐 좀 모지게 마음먹으면 되지.’하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모질게 살아 우리가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 아무리 많이 얻어도 마음은 허전할 것이다. 무엇을 해도 무엇을 가져도 진정으로 마음이 충만해오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동물에서 진화하면서 ‘거울 뉴런’이 생겼다. 서로의 마음을 비춰주는 신경 세포다. 그래서 인간은 ‘서로 꿰어 있는 구슬들이다. 하나가 울면 모두 운다.’

장애인 친구를 내버린 아이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장애인 친구처럼 내버려지지 않기 위해 자꾸만 악한 마음이 되어 갈 것이다.

그렇게 자란 아이가 어머니에겐 어떻게 할까? 다 늙어 힘도 없는 어머니는 그에게 ‘장애인’으로 보일 것이다. 그는 당연히 ‘장애인 엄마’를 버릴 것이다.



나, 사람들을 불쌍하게 보는 이유는

사회라는 우리에 갇혀 사는 사람들 때문이고


나, 사람들을 이상하게 보는 이유는

풍족함 가운데 목말라 하는 그들 모습 때문입니다.


나,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까닭은

그곳에서 나오길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 최은주,《감옥》부분



육체가 장애인이면 육체 안의 영혼이 온전히 깨어난다.


장애인인 시인은 우리가 ‘사회라는 우리에 갇혀 살고, 풍족함 가운데 목말라 한다.’는 것을 본다.


우리들의 감옥이 훤히 보인다. 시인은 우리를 위해 간절히 기도한다. ‘그곳에서 나오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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