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

by 고석근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

영혼 없는 노동은 삶을 질식시킨다. - 알베르 카뮈


예수는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든다.

‘포도원 주인은 아침부터 나와서 일한 사람과 마지막에 나와서 잠시 일한 사람에게 똑 같은 임금을 주고 나서, 자신의 행동을 선하다고 강변한다.’

그 포도원 주인의 행동은 옳다. 만일 늦게 나온 품꾼에게 품삯을 적게 주면 어떻게 될까? 아이가 아파서 늦었다면 그 품꾼은 아이를 돌보려면 약값까지 더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최소한 적게는 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늦게 나온 사람이 별 이유 없이 늦는다면 같은 임금을 주는 게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맞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임금을 적게 주는 것으로 해결하려 하지 말고 마을 사람들이 사정을 다 아니까 ‘명예가 실추되는 것’으로 끝나야 한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 남의 인정을 받지 못하면 견딜 수 없다. 사람에겐 명예가 중요하다.

따라서 치사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일부러 일터에 늦게 나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염려 때문에 전체 사회 구성원의 존엄성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그런 사람을 막는다고 일한 만큼 임금을 준다면, 사람들은 위급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저축을 해야 할 것이다.

위급한 이웃이 생겨도 자신의 미래가 불안해 이웃을 도와주려 하지 않을 것이다. 다들 돈을 숨겨 놓고 서로 도와주지 않으면서 겉으로 웃으며 지내야 하는 사회는 얼마나 불행하겠는가?

예수의 가르침은 우리의 삶을 실질적으로 이롭게 하는 것이다. 사후의 천국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거창한 도덕률도 아닌 우리의 실제적 삶의 이치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논리’에 너무나 익숙해져 예수의 가르침에 거부감이 들 것이다. 하지만 ‘일한 만큼 임금을 받고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율법에 따라 사는 우리는 얼마나 삭막해져 버렸는가?

남아도 남에게 주지 못하고 모자라도 남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이 세상은 진정 지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우리는 ‘사람의 마음’을 믿어야 한다. 포도원 주인은 우리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 그 마음을 잃어버렸기에 현대인은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정년으로 회사를 그만둔 사람이

-잠깐 놀러 왔어

하며 나의 직장에 얼굴을 내밀었다.

-심심해서 말야

-팔자 좋군 그래

-그게 글쎄, 혼자 있자니까 엉덩이가 굼실거려서

예전 동료의 옆 의자에 앉은 그 뺨은 여위고

머리에 흰 것이 늘었다.


〔......〕


그런 그가 다른 날

싱글벙글 웃으면서 나타났다.

-일자리를 찾았어

-조그만 가내공장인데


이것이 현대의 행복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쩐지 나는

한때의 그의 여위었던 얼굴이 그리워서

아직껏 내 마음의 벽에 걸어놓고 있다.


일자리를 얻어 되젊어진 그

그건, 무언가를 잃어버린 뒤의 그가 아닌가 싶어서.

진정한 그가 아닌 것만 같아서.


- 요시노 히로시,《일》부분



예수가 얘기한 갈릴리의 농촌 마을은 우리의 ‘오래된 미래’일 것이다. 그런 세상이 오기 전까지는 우리는 ‘평생 고된 일을 해야 하는 형벌’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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