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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惡)

by 고석근

악(惡)


어떤 이가 자신의 그림자를 두려워해 떨쳐내려고 도망쳤다. 더 멀리 도망칠수록 그림자는 몸에서 떨어지지 않아 그 사람은 자신의 달리기가 느리다고 여겨 쉬지 않고 질주하다 마침내 힘이 다해 죽었다.


장자, <장자 제31편 어부(漁父)>에서



우리는 가끔 언론매체에서 ‘생계형 범죄’를 만난다.


‘ ㅅ 무인점포에서 1주일간 16차례에 걸쳐 절도사건이 발생... 피해 물품은 모두 라면과 쌀, 생수 등 생필품... CCTV를 추적해 고시원에서 생활하던 용의자 ㅇ(50대·여)씨를 검거... 그녀는 정신장애자인 남편 ㅂ(60대)씨와 고시원 복도에 살며... 한파임에도 불구하고, 난방조차 하지 못하고... ’


이런 사건을 접하는 마음은 사람들마다 다를 것이다.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자베르는 옥중에서 태어났는데, 어머니는 카드 점을 치는 점쟁이였고, 그 남편도 감옥살이를 하고 있었다.

자베르는 자라면서, 자신이 사회 밖에 있다고 생각하고 사회 속에 되돌아가기를 단념했다.

그는 사회가 두 부류의 인간들을 되돌릴 길 없이 사회 밖에 존속시켜 놓고 있는 데 주목했는데, 그 부류란 사회를 공격하는 사람들과 사회를 지키는 사람들이었다. 그는 이 두 부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자기가 속한 그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는 족속들에 대한 말할 수 없는 증오심을 자신 속에 느끼고 있었다. 그는 경찰에 들어갔다.’


자베르 형사는 겉으로는 정의를 위한 법의 집행자로 보이지만, 실상은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을 증오하는 자였다.


이것이 심층심리학자 카를 융이 말하는 그림자다. 부모를 죄수로 둔 자베르는 자신의 깊은 마음속에 죄의식을 숨기게 된다.


그 그림자가 여동생의 아들을 살리기 위해 빵을 훔쳤다가 19년이라는 세월을 복역하고 출소한 장발장에게 향해진다.


장발장은 성공한 사업가이자 마들렌 시장의 위치까지 오르게 된다. 하지만 자베르 형사는 끈질기게 장 발장의 정체를 밝히려 한다.


장발장이 절망 속에서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은 미리엘 주교의 사랑 덕분이었다.


그는 신세를 지고 있던 성당에서 값비싼 은으로 된 식기류들을 훔쳐 달아나다 경찰에게 붙잡혀 오게 된다.

하지만 미리엘 주교는 그것들은 자신이 선물로 준 것이라며 장발장에게 은촛대까지 선물로 주어 장발장을 구해 주었다.


장발장은 미리엘 주교를 통해 자신 속의 신성(神性), 신의 마음이 깨어난 것이다. 이 신성은 누구나 타고날 때 갖고 있는 본래의 마음, 본성(本性)이다.


그런데 사람은 살아가면서 이 마음이 희미하게 된다. 그림자 때문이다. 자베르는 죄수의 자식이라는 죄의식으로 인해 본성이 깊이 묻히고 자신의 그림자의 꼭두각시로 살아가게 된다.


마음속의 그림자는 우리가 알아주지 않으면, 밖으로 나오려 발버둥을 치게 된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그림자의 조종을 받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마음속에 있는 어두운 그림자가 자신임을 알아야 한다.


‘자신 안의 악마’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의 아픔을 다 들어주고 온 몸으로 소중히 안아주어야 한다.


자베르 형사는 장발장이 아직도 복역할 시간이 많은 가석방 상태로 감옥으로 돌아가지 않은 죄수의 신분을 알아채고 미행을 계속한다.


그러다 혁명이 일어나고 자베르 형사는 혁명군에 의해 체포되어 처형될 위기에 처하지만 장발장이 그를 구해준다.


후에 자베르 형사는 장발장을 체포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를 체포하지 않고 자살로 자신의 삶을 마감하게 된다.


‘정의의 화신’이었던 자신의 정체성이 장발장의 인간미를 통해 완전히 붕괴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깊은 마음속에 있는 검은 그림자를 보게 되었을 것이다. 그는 센강에 몸을 던지며 울부짖었다. “나는 누구인가?”


그는 자신의 검은 그림자가 두려워 한평생 질주해온 자신의 삶을 선명히 보는 순간, 이제 그만 고통스러운 삶에서 해방되고 싶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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