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이름
요임금이 허유를 찾아가 말했다. “선생께서 왕의 자리에 오르시면 곧 천하가 잘 다스려질 것입니다. 천하를 맡아 주시기 바랍니다.”
허유가 대답했다. “임금께서 이미 천하를 잘 다스리고 있는데 제가 임금님을 대신하여 왕이라는 이름을 가지라고 하십니까? 이름이라는 것은 실체의 손님(허상)이니 나더러 손님이 되라는 것입니까?”
- 장자, <장자 제1편 소요유(逍遙遊)>에서
허유는 왜 왕의 자리를 마다했을까? 이 시대에는 아마 왕의 자리는 명예직이었을 것 같다.
아직 철기시대 이전이라 부족국가나 부족국가들의 연맹체 형태를 이루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 철기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며 부족 간의 전쟁이 치열해지고 왕에게 명예뿐만 아니라 돈과 권력이 집중되었다고 한다.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며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이후에는 요순 같은 왕이 나오지 않았다. 지금도 대통령, 국회의원, 재벌회장, 대기업사장에게 명예만 준다고 하면, 허유 같은 인물이 나오지 않을까?
2년 전에 집을 두 채 가진 청와대 수석들에게 한 채를 처분하라고 하자 다들 사표를 냈었다.
지금은 돈과 권력이 최고인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서는 사람들은 명예를 헌신짝처럼 버리게 된다.
명예가 최고의 가치였을 요순시대에 명예를 거부한 허유, 그는 명예보다 더 소중한 것을 보았을 것이다.
영국의 위대한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장미가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해도 아름다운 향기에는 변함이 없는 것을...... .”
줄리엣은 로미오에게서 ‘인간의 향기’를 본 것이다. 그에게 원수 집안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그는 여전히 아름다운 향기를 풍겼던 것이다.
올바르게 살아가는 사람에게서는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향기가 난다. 허유는 자신이 어떤 이름을 갖더라도 아름답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 이름이 설령 왕이라고 해도 아름다움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허유는 걱정했을 것이다.
‘왕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면, 아름다움을 잃어버리게 되지 않을까?’ 그는 왕이라는 이름이 자신의 ‘소요유(逍遙遊)’를 가로막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 일화를 많은 사람들이 인용한다. 대개 이름의 허망함으로 해석한다. ‘명함이 다 무슨 소용이냐?’
이 일화가 ‘정신승리법’에 이용될 수 있다. 우리는 항상 자신의 마음을 고요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아름다운 사람만이 명함의 허망함을 말 할 수 있다. 나이 들어 힘이 없어진 나이에 장자를 읽으며 자신을 위로하지 말아야 한다.
힘이 없어졌을 때, 자신의 마음을 솔직히 바라보아야 한다. 파도치는 자신의 마음을 오래 바라보아야 한다.
파도치는 마음이 차츰 가라앉으며 맑디맑은 마음이 되어갈 것이다. 이 마음이 바로 뭐라고 이름을 붙여도 여전히 아름다운 마음이다.
우리가 이 마음으로 허유를 바라볼 때 비로소 허유의 언행이 보일 것이다. 우리도 허유처럼 아름다운 인간이 되기 위해 분발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