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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원이덕(報怨以德)

by 고석근

보원이덕(報怨以德)


마치 일생을 통해 선을 행하고 성인의 자질을 개발하면 우리 안이 빛으로 가득 채워져서 어두움은 저절로 사라질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심층심리학에서는 전혀 다른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빛이 밝을수록 어두움을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빛을 밝히면 밝힐수록 어두움 또한 확대된다는 것이다.


- 로버트 존슨, <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에서



TV 드라마 ‘트롤리’를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트롤리라는 말은 소수 혹은 다수를 위해서 누군가를 희생시킬 수 있는지 묻는 ‘트롤리 딜레마’에서 나왔다고 한다.


주인공 김혜주는 고등학교 시절에 친구 이유신의 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할 뻔 했다. 피투성이가 되어 도망친 그녀는 그의 어머니에게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의 어머니는 서울대 법대에 입학한 아들을 지키기 위해 김혜주에게 대학에 가면 장학금을 받을 수 있게 하겠다며 사건을 덮어달라고 애원한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찾아와 돈 때문에 그러느냐며 모욕적인 말을 한다. 그녀는 경찰서를 찾아가 그를 고소한다.


그는 목을 매어 자살하게 된다. 그의 어머니는 ‘자랑스러운 아들’을 지키기 위해 김혜주를 희생양으로 삼는다.


김혜주가 돈을 뜯어내려 자신의 아들을 성폭행범으로 협박하여 아들이 끝내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다는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주인공의 친구 이유신은 김혜주가 국회의원의 부인이 되어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고 분노한다.


과거를 잊고 조용히 살아가고 싶어 했던 주인공 김혜주는 다시 악몽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주인공처럼 억울한 일을 당할 수 있을 것이다. 거미줄에 걸린 나비처럼 아무리 비명을 지르고 발버둥을 쳐도 벗어날 수 없는 상황.


미국의 융 분석가 로버트 존슨이 지은 ‘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에는 누명을 쓴 신부가 나온다.


신부가 사는 마을의 한 처녀가 애를 뱄다. 마을 사람들이 수군거리자 그녀는 신부에게 성폭행을 당해 임신을 하게 되었다고 고백하게 된다.


하지만 누명을 쓴 신부는 담담하게 자신의 소명에 충실하게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처녀의 연인이 돌아온다.


처녀는 자신의 연인을 보호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신부는 담담했다.


이 신부는 처녀의 모략에 걸려들었지만, ‘마음의 중심’을 잃지 않았다.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중심의 빛에는 그늘이 없다. 그곳은 마치 성배처럼 이 세상 너머 다른 세계의 시공간에 존재한다.(칼 융)’

따라서 우리는 ‘일생을 통해 선을 행하고 성인의 자질을 개발하면 우리 안이 빛으로 가득 채워져서 어두움은 저절로 사라질 것처럼’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빛이 밝을수록 어두움을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빛을 밝히면 밝힐수록 어두움 또한 확대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마다 어떤 선택을 하려 한다. 하지만 선택한 빛은 어두움을 만들어낸다.


그 어두움은 언젠가는 밖으로 뛰쳐나와 선택한 사람과 주변 사람들을 해치게 된다.


우리는 빛을 선택하지 말아야 한다. 그 신부처럼 마음의 중심을 잡고 살아가야 한다. 마음의 중심은 천지자연의 기운까지 바로잡게 된다고 한다.


‘보원이덕(報怨以德)’이라는 말이 있다. 원한을 덕으로 갚는다는 듯이다. 덕(德)은 도(道)에 맞는 행동을 말한다.


원한을 덕으로 갚게 되면, 신부처럼 언젠가는 누명이 벗겨지게 된다. 설령 그 처녀의 연인이 돌아오지 않아 신부의 억울함이 밝혀지지 않았더라도 신부는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트롤리의 주인공 김혜주도 원한을 덕으로 갚았으면 좋겠다.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중심을 찾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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