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대로 해!
하늘에 죄를 얻으면 빌 곳이 없다. 획죄어천 무소도야. 獲罪於天 無所禱也.
- 공자, <논어 제3편 팔일(八佾)>에서
천년 고찰 해인사에서 스님들이 설 연휴 기간 1000만 원대의 현금을 건 윷놀이를 했다고 한다.
이건 누가 봐도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 될 것이다. 실정법으로 보면 도박이 될 테니까.
법도를 무수히 어긴 대선사가 있다고 한다. 경허선사. 그는 도를 깨치고 난 후 오도송(깨달음의 노래)을 짓고는 사방을 둘러보며 크게 외쳤다고 한다.
“사람이 없구나!” 깨달음의 눈으로 보니 이 세상에 제대로 된 사람이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그 후 ‘술과 고기와 여자를 좋아하는 승려’로 많은 지탄을 받았다고 한다. 말년에는 절에서 나와 속세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 때 경허선사가 남긴 선풍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 본 승려는 가까운 제자들을 비롯한 소수였고, 그를 불교의 위상을 추락시킨 부끄러운 승려로 취급한 승려가 대다수였다고 한다.
그 당시 그에게 손가락질을 한 많은 승려들은 자신을 ‘청정비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른 후, 경허 선사는 우리의 암울하던 근대를 밝힌 대선사로 추앙을 받고 있다.
분명히 불교의 계율을 어긴 경허 선사가 왜 대선사로 추앙을 받고 있을까? 그럼 물의를 일으킨 해인사의 승려들도 세월이 흐른 후에 평가받아야 하는 건가?
공자는 70이 되어 말했다. “마음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
그럼 공자는 정말 나이 70이 되면서 마음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을까? 그는 준법정신의 모범일까?
그가 말하는 법도는 우리가 알고 있는 실정법이 아닐 것이다. 그가 일생 동안 두려워 한 것은 천명(天命)이라고 한다.
천명은 하늘(도道, 신神)의 명령이다. 공자는 나이 70이 되어 마음대로 해도 천명을 어기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자신의 마음과 하늘의 명령이 일치하는 경지, 바로 성인(聖人)의 경지다. 공자는 천명을 행하며 많은 실정법을 어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정법의 법(法)이라는 글자에는 ‘물(水)이 흐르는(去) 것’이라는 뜻이 있다. 물처럼 흘러가는 게 법이라는 것이다.
예수는 말했다. “나는 법을 깨러 온 게 아니라 세우러 왔다.” 그는 그 당시의 법을 글자 그대로 지키려는 율법주의자들에게 맞서 하느님의 말씀에 맞는 법을 세우려 했을 것이다.
우리는 가끔 “법대로 해!”라는 말을 듣는다. 이 말에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이 담겨 있을 것이다.
올바름을 가리기 위해 법대로 하자는 사람, 내가 힘이 있으니 법대로 하자고 하는 사람, 정의를 세우기 위해 법치를 부르짖는 사람...... .
하지만 법이라는 건 항상 하늘, 신, 도의 명령에 맞는지가 점검되어야 한다. 이 하늘, 신, 도의 명령이 자신의 마음과 일치하는 사람만이 실정법의 진정한 정신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법을 글자 그대로만 해석하게 되면, 결국에는 힘 있는 사람들과 법망을 피해 자신들의 이익을 교묘하게 챙기는 사람들의 법이 되어 버린다.
우리는 실정법 위에는 하늘과 신과 도가 만든 자연법(自然法), 천지자연의 이치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해인사의 법도를 어긴 승려들에 대한 평가는 ‘실정법을 어겼느냐의 문제를 넘어서 자연법을 어겼느냐의 문제’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거액을 걸고 윷놀이를 하면서, 자신 안의 하늘의 소리를 듣고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승려가 있었다면 그는 대선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