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가는 대로 살아라

by 고석근

마음 가는 대로 살아라


마음이 곧 이치(心卽理)다. - 왕양명



중국 양명학의 창시자 왕양명은 말했다. “마음이 곧 이치다.” 즉 ‘마음 가는 대로 사는 게’ 세상의 이치대로 산다는 것이다.


이 말에 대해 ‘마음대로 산다고? 그럼 세상이 혼란에 빠져 인간이 살 수가 있나?’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대로’ 살아보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마음대로 살아본 사람은 알 것이다. 마음대로 살려고 해도 자신의 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고. 마음대로 살려면 자신의 마음을 알아가는 긴 수행이 있어야 한다고. 우리는 마음을 잃어버렸다.


나는 30대 중반에 처음으로 내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문학 공부를 하러 다니면서, 난생 처음으로 ‘나’라는 존재를 느꼈다. 강의가 끝난 후 길고 진한 뒤풀이 시간이 말갛게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


주점 한 귀퉁이에 자리 잡은 우리는 한 세계를 이루었다. 세상의 시간은 우리를 비껴가고 새로운 시간이 우리와 함께 고요히 머물렀다. 취기가 오르며 우리는 점점 마알간 영혼이 되어갔다.


뒤풀이에서 나는 참으로 많은 눈물을 흘렸다. 내 마음을 정화하는 성스러운 의례였다. 내 마음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불순한 마음들이 깨끗이 씻겨 내려갔다. 혼자 들판을 헤매며 펑펑 울 때 나는 햇살처럼 투명한 내 마음을 보았다.


투명한 마음은 우주와 하나였다.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이치에 따라 사는 것. 나는 주신(酒神)과 접신하고서야 그 경지를 어렴풋이 느꼈다. 그래서 나는 술을 사랑한다.


나는 술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도 언젠가는 내 마음의 거대한 세계, 곧 우주를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는다. 명상을 하고, 요가를 하고, 인문학을 공부하고, 글을 쓰고, 사람들과 부대끼며, 나를 절차탁마하고 있다.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빛의 신 아폴론을 섬겼다. 그래서 마음을 잃어버렸다. 마음에는 ‘숫자만 헤아리는 이성(理性)’만 있는 게 아니다. 이런 이성은 섬처럼 작다. 마음의 대부분은 무의식이라는 커다란 바다다.


마음의 대양을 알려면 아폴론신은 멀리하고 어둠의 신, 주신(酒神) 디오니소스를 만나야 한다. 그러면 짙은 어둠에 잠겨있던 무의식의 거대한 바다가 깨어난다. 우리는 우주의 자궁, 커다란 대양에 평화로이 잠든 태아가 된다.


우리는 마음의 자궁에서 이 태아를 낳아야 한다. ‘아기’로 거듭나야 한다. 노자는 말했다. “두터운 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기에 비유될 수 있다. 벌과 전갈 살무사 뱀 등도 아기를 물지 않고, 사나운 날짐승과 맹수도 그를 해치지 않는다.”


무의식의 큰마음에 들어가 보지 못하고, 우리 마음의 지극히 일부부인 ‘의식의 숫자 헤아리는 이성’으로만 살아온 사람은 자신의 마음대로 사는 것을 믿지 못한다. 자신을 믿지 못하니 남도 믿지 못하고 세상도 믿지 못한다.


이런 이성으로 살아가는 대다수 사람들은 법이 있어야 하고, 법을 강제 집행하는 권력자가 있어야 안심한다. 항상 자신의 이성을 의심하며 자신의 마음을 살펴온 당대의 지식인 카잔자키스는 조르바를 알아본다.


그는 조르바에게서 마음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야성의 현자를 본다. 조르바가 그의 두목(소설 ‘조르바’의 화자)에게 말한다. “그럴 기분이 생긴다면! 아시겠소? 마음 내키면 말이오... 마음이 내켜야 하오... 결국 당신은 내가 인간이라는 걸 인정하라 이 말이오.” 두목이 묻는다. “인간이라니? 그게 무슨 뜻입니까?” 조르바는 담담히 대답한다. “자유라는 거요.”


자유는 글자 그대로 ‘자신의 행동이 자신(自)에게서 나오는(由) 것’이다. 자기 마음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은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다. 자그마한 이성으로만 살아오다 이성의 거대한 울타리를 깨고나와 충동에 마구 휩쓸리는 것을 자유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 얼마나 밑이 빠진 토요일이냐!

하구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는,

이 매력적인 유성,

호텔마다의 물결치는 발들,

성급한 오토바이 주자들,

바다로 달리는 철로들,

폭주하는 차륜을 타고 달리는 엄청난 부동자세의 여자들.

매주일은 남자들과, 여자들과

모래에서 끝난다,

무엇 하나 아쉬워하지도 않고, 계속해서 움직이고,

종잡을 수 없는 산으로 올라가고,

의미도 없이 음악을 틀어 놓고 마시고,

기진맥진해서 콘크리트로 다시 돌아온다.


- 파블로 네루다,《아, 얼마나 밑이 빠진 토요일이냐!》부분



우리의 ‘불금’이 이렇지 아니한가! 이렇게 휴일을 보내지 않으면 우리는 견딜 수 없다. 우리는 휴일동안 마음껏 자유를 누렸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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