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벽
타인은 신의 육화가 아니다. 그러나 ... 타인 속에서 신은 나타난다. - 에마뉘엘 레비나스
오늘은 이사 간 제자 집에서 강의하는 날. 시간에 맞춰 택시를 타고 씽- 초겨울의 바깥 풍경이 따스하게 느껴진다. 친절한 기사님께서 308동 앞에 내려주었다.
503호지? 5라는 숫자가 보이는 현관 앞에 다가가 호출을 해도 아무런 대답이 없다. ‘어찌 된 거야?’ 마침 번호키를 누르고 들어가는 한 아주머니가 있어 따라 들어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에서 내렸다. 앗, 그런데 503호가 없다.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불안장애 환자. 예기치 않은 상황에 부닥치면 불안이 해일처럼 밀려온다. 엘리베이터를 탔다. 1층에 내려가 바깥으로 나갔는데 나가는 입구가 없다. 나는 마음을 가까스로 진정시키며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 아래 L자가 쓰인 지하로 내려갔다. 밖을 내다보니 이번에도 입구가 안 보인다. ‘아, 어찌해야 하나?’ ‘문은 어디에 있단 말이냐?’’
나는 불안장애 환자가 되고 나서 카프카의 ‘변신’ ‘성’ ‘심판’, 뭉크의 ‘절규’ 등이 확연히 이해되었다. 전에는 막연히 그런 작품들이 좋았는데, 이제는 가슴이 베이는 듯 아리게 와 닿는다. ‘아, 그들도 분명히 나 같은 병을 앓았을 거야!’ 이런 병을 앓아보지 않고는 그렇게 선연하게 그런 상황들을 상상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엘리베이터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떨리는 손으로 약을 먹고, 가까스로 밖으로 나와 현기증 속에 비틀거리며 간신히 슈퍼로 들어가고, 부동산 사무실에 들어가고, 전화를 빌려 쓰고...... .
이 세상에 나 혼자 내팽개쳐졌는데,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하기가 힘들다. 의심 그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눈빛들은 얼마나 무서운가! 상처 받은 짐승은 위로 받는 존재가 아니라 먹잇감일 뿐이다.
제자 한 분이 부동산 사무실로 찾아와 함께 집으로 들어갔다. 제자들은 이미 다 와 있었다. 훈훈한 집. 나는 술을 마시며 신나게 강의를 했다. 오늘 겪은 참담한 이야기를 실마리로 잡아 오늘의 강의 주제인 ‘주체적인 삶의 어려움’을 술술 풀어나갔다.
술만 마시면 활력이 솟구치는 몸. 나는 강의 자체가 즐겁다. 강의를 진행할수록 신명이 난다.
정글 속에 내팽개쳐졌어도 내게는 이런 따스한 영역들이 있어 견뎌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따스한 영역이 없었더라면 나는 어떻게 내 병을 견딜 수 있을까?
꽃이 보이지 않는다. 꽃이 향기롭다. 향기가 만개한다. 나는 거기 묘혈을 판다. 묘혈도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묘혈 속에 나는 들어앉는다. 나는 눕는다. 또 꽃이 향기롭다. 꽃은 보이지 않는다. 향기가 만개한다.
- 이상,《절벽》부분
그렇다! 인간에겐 생로병사가 고통이 아니다. 따스한 인간의 온기가 없는 세상이 고통이다. 망가지고 자살하는 사람들은 사람의 온기가 없어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구원은 인간만이 한다. 신은 ‘인간의 온기’의 상징이다. 정글이 되어버린 세상. 구원의 손길은 서로의 여리디 여린 손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