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펜스

by 고석근

달과 6펜스


인간에게 원숭이란 어떤 존재인가? 하나의 웃음거리 혹은 하나의 참기 어려운 수치가 아닌가? 그리고 초인에게는 인간 또한 그러한 존재이다. 하나의 웃음거리 혹은 참기 어려운 수치인 것이다.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오래 전에 읽었던 영국의 작가 서머셋 몸의 소설 ‘달과 6펜스’를 다시 읽어 보았다.


소설 속의 화자인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 나이라면 모를까, 그는 이미 청년기를 넘기고 버젓하게 사회적 지위를 지닌 증권 중개업자인 데다가 아내와 두 아이까지 거느린 가장이 아닌가. 나에게는 가능한 일이라도, 그에게는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나는 그에게 성공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과 나중에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어디서 많이 들어봄직한 얘기다. 나이 들어 꿈을 꾸는 사람에게 주변에서 흔히 하는 말이다. “성공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나중에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다.”


소설속의 주인공 스트릭랜드는 말한다. “어쨌든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해요.” 그는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어쨌든 나는 ㅇㅇ을 해야 해요.’ 이런 마음이 들 때, ‘나의 신화’가 탄생한다. 육체의 삶과 영적인 삶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나도 이런 경험을 했다. 30대 중반에 직장을 그만두고, 세상을 떠돌았다. 남이 보면 어처구니가 없었을 것이다.


소설 속의 스트릭랜드처럼 나도 ‘아내와 두 아이까지 거느린 가장’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무언가 크게 잘못될 것 같았다. 나는 긴 방황 끝에 ‘나의 길’을 찾았다.


화자가 말한다. “삼류 화가 이상은 되지 못할 걸요. 그런데도 모든 것을 포기할 만한 가치가 있나요? 다른 분야에서는 그다지 뛰어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어요. 보통 수준만 되면 그럭저럭 따라갈 수 있지요. 하지만 예술가는 다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고민을 한다. 특히 청소년을 둔 부모님들은 “아이가 재능이 있을까?”를 묻는다.


나는 재능 자체를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는 해봐야 알 수 있다.


해보다 보면 길이 열린다. 설령 재능이 없다고 해도 다른 새로운 길이 열린다. 노래를 부르다 길이 막히면 노래를 가르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노래를 가르치다 길이 막히면 멋진 음악 카페나 노래방을 운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사업이 망해도 기쁨을 아는 사람이라, 흥겹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에게 삶은 축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안에서 솟아올라오는 기쁨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대다수 사람들에게 인생은 숙제가 되어 있지 않는가?


하다못해 읽어야 할 책까지도 정하려 한다. 나이 몇 세에는 무엇을 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지옥에도 그런 끔찍한 형벌은 없을 것이다. 항상 찌푸린 얼굴로 살아가는 사람들, 가슴은 굳어 하나의 돌멩이처럼 살아가는 사람들.


스트릭랜드는 “이런 바보 같으니라고.”라고 말한다. 화자가 “불을 보듯 빤한 사실을 말하는데 왜 바보라는 거죠?”라고 하자.


스트릭랜드는 소리친다. “나는 어쨌든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견디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는 문제가 되지 않소. 우선 헤어 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인생의 고해(苦海)에 빠진 사람들, 그들에게 고통의 바다에 빠져나오는 것보다 중요한 게 무엇이 있는가?

6펜스를 움켜쥐고 아득바득 살아가는 사람들, 저 하늘의 달을 보아야 한다. 인간은 직립을 하고부터 하늘을 보게 되어 있다.


6펜스를 꽉 쥐고 있는 한, 고통의 바다에서 헤엄을 치고 나올 수가 없다. 빈손이 되어야 한다.


지상으로 올라와 땅에 두 발을 굳건히 딛고 달을 바라보아야 한다. 이 소설의 모델은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폴 고갱이라고 한다.


30대 중반에 직장을 버리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고갱은 타히티 섬으로 갔다. 거기서 그는 인간의 원초적인 삶을 보았다.


거기에서는 6펜스와 달이 하나였다. 속(俗)과 성(聖)이 하나인 삶, 그는 거기서 불후의 명작들을 그렸다.

고갱은 ‘신령한 향수에 사로잡힌 영원한 순례자’였다. 니체가 말하는 초인(위버멘시)이었다.


니체는 6펜스를 두 손으로 꼭 쥐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웃음거리 혹은 참기 어려운 수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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