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는 죽음을 죽인다
인생의 목적은 끊임없는 전쟁이다. 용기는 죽음을 죽인다. 그때 용기는 이렇게 말한다. “이것이 삶인가, 그렇다면 다시 한 번!”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일본의 시인 무라노 시로오는 ‘죽음’을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줄곧 쫓기고 쫓겨왔다/발톱도 찢기고 눈물도 마르고/하늘과 숲이 멀리 물러나기 시작했다.’
동물은 죽음을 모른다. 생각하는 존재인 인간만이 자신의 죽음을 안다. 죽음을 알기게 살아있으면서도 항상 무언가에 쫓기고 쫓긴다.
알 수 없는 두려움, 그 근저에는 죽음의 공포가 있다. 어느 날 우리는 죽는다. 총에 맞은 짐승처럼.
‘나의 주검이/쓸쓸한 가시덤불 속에 뒹굴고 있다’
그때 누군가가 우리의 주검에 다가온다. 시인은 “사냥꾼처럼/넋이 나를 찾으러 왔다”고 노래한다.
우리는 평소에는 넋을 놓고 살아간다. 항상 무언가에 쫓기며 살아가기에 넋을 챙길 여유가 없다.
죽음이 임박해서야 비로소 넋이 우리를 찾아온다. 우리는 누구나 온전한 인간으로 죽을 것이다.
평소에도 온전히 넋을 챙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중국 명대의 양명학의 창시자 왕양명은 죽을 때 유언을 해달라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마음이 환하다. 무슨 말을 할 말이 있겠는가?”
왕양명은 마음을 환하게 밝히기 위해서 일생동안 공부를 했다. 그의 공부 방법은 삶 속에서 공부하는 것이었다.
살아가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매사가 공부의 자료였다. 그는 무슨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마음속의 ‘양지(良知)’에 비추어 해결했다.
양지는 인간의 본성에 있는 ‘타고난 지혜’를 말한다. 배우지 않아도 척 보면 아는 마음이다.
계속 양지를 쓰게 되면서 마음 전체가 환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더 무슨 말을 하랴?
말을 더할수록 마음은 어두워진다. 왕양명은 제자들에게 최후의 가르침을 준 것이다.
경허 선사도 죽음을 앞두고 이와 같은 임종게(臨終偈)를 남겼다.
‘마음 달 홀로 둥글어 그 빛이 만상을 삼켰도다 빛과 경계를 함께 잊으니 다시 이것이 무슨 물건인고’
삼라만상은 오로지 마음이다. 하늘의 달이 천 개의 강에 비치면, 우리 눈에는 강마다 달이 하나씩 있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오직 실재하는 것은 하늘의 달이다. 우리의 마음이 이와 같다. 각자의 마음이 있는 것 같지만, 실은 하나의 마음이다.
이것을 장자는 만물제동(萬物齊同)이라고 했다. 미혹한 눈으로 보면, 각자의 마음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깨닫고 나면 자신의 마음이 곧 천지자연의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삼라만상은 하나인 것이다.
이 하나의 마음을 오롯이 느끼는 경허 선사는 빛과 경계를 함께 잊는다. 오로지 마음 달이 있을 뿐이다.
그는 육체의 죽음 앞에서 다시 한 번 이 마음을 환하게 느낀다. 마음이 있는 것조차 잊고 있다.
니체는 우리에게 이 경지에 도달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인생의 목적은 끊임없는 전쟁이다.’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기에 끊임없이 자신과 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언어로 이 세상을 보게 된다.
그는 영원회귀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매번 닥쳐오는 이 순간이 영원히 반복된다는 것을 한시도 잊지 말고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하라는 것이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이 영원히 반복되어도 좋아!” 이런 마음가짐으로 인생을 살아가라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이 용기가 이렇게 말하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이것이 삶인가, 그렇다면 다시 한 번!”
이때 우리는 생(生)을 활짝 꽃 피울 수 있고, 죽음은 더 이상 낯선 것이 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