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자신을 알라
무지를 아는 것이 곧 앎의 시작이다.
- 소크라테스 Socrates (BC 470- BC 399,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프랑스의 낭만주의 작가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이야기 한 토막.
미리엘 신부가 걸인인 장발장을 데려다 따뜻한 음식을 대접하고 재워주지만 장발잔은 새벽에 은제 제기를 갖고 도망을 친다.
장발장을 수상하게 여긴 경찰은 그를 절도죄로 체포하여 미리엘 신부에게 데려온다.
하지만 미리엘 신부는 은제 제기를 장발장에게 선물로 주었다고 말하며 “은촛대는 왜 안 가져갔느냐?”고 장발장에게 묻는다.
장발장은 누구인가?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분명히 ‘절도범’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신부의 눈에는 어떻게 보였을까?
신부는 장발장의 내면에서 ‘성령(聖靈)’을 보았을 것이다. 누가 장발장을 제대로 본 것일까?
인류의 스승 소크라테스는 우리에게 말한다. “무지를 아는 것이 곧 앎의 시작이다.”
장방장이 우리 눈에 선명하게 절도범으로 보일 때, 우리는 ‘나는 그를 모른다!’는 것을 선명하게 알아야 한다.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닌 것이다. 우리의 뇌는 세상이 심어준 언어(생각)로만 세상을 본다.
절도범이라는 언어를 익혀 장발장이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이 언어를 내려놓아야 한다.
미리엘 신부는 오랫동안 수행을 하며 마음의 눈으로 이 세상을 보게 되었을 것이다.
우리의 눈에 절도범 장발장이 선명하게 보였을 때, 우리는 “나는 그를 모른다!”고 속으로 외치며 마음을 완전히 내려놓아야 한다.
그러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장발장의 내면에 있는 신처럼 거룩한 영혼이.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들이 다 허상임을 아는 것, 이것이 앎의 시작이라고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이렇게 항상 자신을 성찰하며 네 자신이 스스로 이 세상의 진리를 알 수 있는 존재라는 것 알라!”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는 이 세상의 이치를 로고스라고 했다. 이 로고스를 아는 인간의 마음도 로고스라고 했다.
중국의 ‘성즉리(性卽理)’와 같다. ‘인간의 본성(性)이 곧 이 세상의 이치(理)’라는 것이다. 본성으로 이 세상을 보면, 진리가 그대로 보인다는 것이다.
지금 이 세상의 어디선가 울고 있는 이
까닭 없이 울고 있는 이
그 사람은 나를 위해 울고 있다.
지금 이 세상의 어디선가 웃고 있는 이
밤 속에서 까닭 없이 웃고 있는 이
그 사람은 나를 위해 웃고 있다.
- 라이나 마리아 릴케, <엄숙한 시간> 부분
우리는 항상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혀 ‘엄숙한 시간’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이 세상의 어디선가’에서 ‘까닭 없이 울고 있는 이’가 나를 위해 울고, ‘까닭 없이 웃고 있는 이’가 나를 위해 웃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